음력 3월 10일
양력으로 4월 16일은 제세주(濟世主)가 형(刑)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예식날이었다. 지방의 교인들이 ▣…▣ 박형채 등이 주관하였기 때문에 정원섭(丁元燮)·이승규(李昇圭)·구락서(具洛書)가 공포(公布)하기를, “송병준과 박형채를 옳다고 하는 교인은 이 예식에 동참하고, 구암선생을 따르는 교인은 사직동(社稷洞)의 선생님 본댁으로 가서 예식을 치루자”고 하니, 지방의 교인 400여명이 사직동으로 가고, 오문흠(吳文欽)·최승수(崔承守)·최승우(崔承宇)·김명수(金鳴璲)·송홍서(宋弘瑞)·이순조(李舜祚)등 30여명만 사동(寺洞)의 교당예식에 동참하였다. 최인암(崔仁菴)은 오지 않고, 원신암(元愼菴)은 참석하지 않고서 사동의 교당에서 음복(飮服)하였다고 하였다. 곽청암(郭淸菴, 곽기룡)은 오지 않고 나중에 중립을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