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해 신묘년(辛卯年, 1891) 5월에 대신사와 대교주께서 부안에 오셔서 며칠 동안 계시다가 금구(金溝)로 가서 김덕명(金德明)의 집에 머무르시다가 말씀하시기를, “꽃이 부안에서 피어 부안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교우(敎友)가 질투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때 부안의 접주는 김영조(金永祚)씨였다. 하루는 나에게 말하기를, “어젯밤 꿈에 대신사께서 금구(金龜)와 같은 물건 하나를 채색비단으로 4~5겹 싸서 주시며 그대에게 전하라”고 하여 대신사를 뵈었더니, 이상한 일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