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26일에 대대장 이하 죄인 모두가 서울로 길을 떠났는데, 사촌동생 낙정은 병사의 행구(行具)를 메고 뒤를 따라왔다. 며칠만에 서울에 도착해서 감옥에 가두었다. 여러 차례 심문(審問)은 순순했으나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서 겨와 지게미라도 달게 먹었다. 낙정이 물장수를 하거나 밤에는 짚신을 삼아 그 돈으로 하루에 한 차례씩 음식을 들여보내고, 해가 뜨면 감옥문 앞에 홀로 서있었다. 그 당시에 위아래 감옥의 죄수가 500여 명이었는데, 성안의 중요인물도 많이 있었으나 새로운 정식(政式, 법률)을 두려워하여 한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러나 낙정만이 매일 문앞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장(署長)이하 청사(廳使, 심부름꾼)까지 칭찬이 그치지 않고 조선에서 한 사람 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매일 1차례씩 문을 열어 죄수들에게 바람을 쏘일 때에 청사(廳使)가 우리 형제를 인도하여 문틈으로 사촌 간에 얼굴을 보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