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밤에 형의 꿈속에 아버지가 오셔서 우리 형제에게 목욕을 시키고 오장(五臟)까지 깨끗하게 씻겨주셨다고 하였는데, 21일에 우리 형제가 풀려났다. 그 때에 박태로·이방언·김방서도 함께 풀려나서 옥문 앞을 나서니, 서장이 말하기를, “너희 형제가 살아서 돌아가는 것은 사촌동생의 덕으로 알아라”고 하였다.
보성군수 유규원은 나주에서부터 함께 서울에 와서 같은 서(署, 관서)에 있어 정의(情誼)가 친밀하였다. 며칠전에 역시 풀려나서 다시 복직되어 내려가게 되었는데, 며칠동안 동행하다가 여산(礪山)의 숙현점(宿峴店)에 이르러 길이 나뉘어지게 되었다. 유규원씨가 말하기를, “해가 아직 남아있으나 갈림길이 삼삼하니 이 점막(店幕)에서 함께 자고 내일 길을 떠나자”고 하였다. 주안(酒案)를 가져오고 행장에 있는 반찬을 내어 은근히 접대하며 말하기를, “서울과 지방의 인심이 매우 다르니 김서방도 아무리 죄가 없고 상법(上法) 아래 무사히 죄를 면했더라도 마음을 놓지 말고 해가 저물 때를 이용하여 집에 돌아가서 처자나 만나본 뒤에 나에게 내려와 며칠 경과하면 그칠 것이니 부디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