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 말을 명심하고 다음날에 헤어져서 29일 밤에 살고 있던 곳에 도착하여 사촌동생 집의 곁방에 숨어 처자와 상봉하였다.
며칠 동안 머무르다가 내 집 곁방으로 옮겨와서 숨어 밖의 소문을 알아보았더니, 그 사이에 죄 없이 해를 입은 자가 경내에 100명이 넘었고 인심이 전보다 매우 달랐다. 그래서 문론(文論)을 알기 위하여 군수(郡守)·군내의 친구들·향촌안의 아무아무개씨·문중의 아저씨들에게 서울에서 편지를 보내는 모양으로 보내었더니, 대부분이 모두 마음을 풀고 기뻐하였다. 노적리(露積里)의 고진사(高進士)는 마을에 와서 말하기를, “김아무개 형제가 살아서 돌아오는데, 경내의 우리 모두가 호마다 쌀 1말씩 거둬서 생활하게 하는 것이 의리에 당연하다”고 하였다. 형수씨가 내 집에 오는 길에 순제(蓴堤) 언덕을 지나다가 군내에 사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낚시를 드리우고 늘어앉아 “김생원 형제가 살아서 돌아오는데 우리가 빈손으로 가서 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며칠 뒤 밤에 서울에서 내려오는 모양으로 외갈촌(外葛村) 형의 집에 갔더니, 마을의 남녀노소가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부터 멀고 가까운 곳의 친구들이 계속 찾아왔는데, 술을 가져오거나 남초(南草)와 반찬 등의 물건을 가져와서 시장에 가는 것과 같았다. 우리 형제는 원래부터 재산이 넉넉하여 밖의 재산은 한 푼의 돈도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시국에도 집안에 외부인의 침탈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한마을에 사는 최명오(崔明五)는 여러 대 동안 이웃에 살아 세교(世交, 대대에 걸친 교분)가 특별하였으나, 세력과 인격 및 가치가 서로 같지 않아서 늘 시기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런 시국을 맞아 우리 형제가 잡혀간 뒤에 우리 형제의 갓·망건·은장도(銀粧刀)·풍안(風眼)·풍잠(風簪 )·가죽신발 등을 모두 빼앗아갔고, 장신포(長信浦)에 사는 유정문(柳正文)과 어울려서 논 8두락지를 빼앗은 일이 있었다. 우리 형제가 내려온 뒤에 최명오가 형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패물 등을 그 사이에 빌려썼는데, 지금 그대가 내려왔으니 전부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형이 말하기를, “이제와서 이러한 물건이 나에게 맞지 않으니 그냥 쓰라”고 하였더니, 고맙게 여겼다. 다음날에 최명오가 형의 집에 손님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고 군수에게 말하기를, “김아무개가 내려온 뒤에 다시 기포(起包)하려고 한다”고 하니, 군수가 면내(面內)에 전령하기를, “누구를 막론하고 천덕(天德, 天師의 덕)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자가 있으면 잡아서 가두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문을 닫고 손님을 들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집안에서 겪은 일은 모두 기록하기가 어렵다. 지난해 10월에 증조부 산소를 상동면(上東面) 마미산촌(馬尾山村) 뒤에 쓰기로 할 때에 마을에서 승낙하여 부역(負役)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우리 형제가 잡혀간 뒤에 마을에 다른 의논이 생겨나서 군수에게 정장(呈狀)을 하였더니, 처분하기를, “마을에서 바로 산소를 파도록 독촉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해당 마을의 사람 4~5명이 처분을 적은 문서를 가지고 형의 집에 와서 하루가 가기 전에 파가도록 재촉하였다. 그래서 애걸하기를, “내일 시장에서 삼베나 얻어야 이장을 할 수 있으니 3일만 물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저들이 모두 술을 먹고 풍파를 야기할 때에 최명오의 아들 여선(汝善)이가 방에 있다가 말하기를, “말을 이렇게 안해도 산소를 파갈 것인데 어찌하여 소란스럽게 하는가”라고 하였더니, 저들이 취중(醉中)에 말하기를, “너는 어떤 놈인데 남의 공담(公談)을 하느냐”라고 하며 서로 힐난하였다. 그런 와중에 여선의 어머니가 와서 그것을 보고 호령하여 말하기를, “백옥같은 내 자식을 어떤 놈이 이렇게 하냐”라고 하며 달려들다가 시장가 연못에 거꾸로 엎어져서 온몸이 진흙을 뒤집어써서 도깨비와 비슷하였다. 그 모양으로 보복할 마음이 일어나서 바로 관문(官門)에 들어갈 때에 최명오가 향교에서 군수를 찾아뵙고 오다가 어떤 도깨비 형상을 보고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자신의 아내였다. 그 이유를 들은 뒤에 군수에게 정소(呈訴)하였더니, 군수가 말하기를, “저 4명을 성화같이 잡아와 곤장을 세게 쳐서 가두었다가 4일 뒤에 풀어주라”고 하였다. 그런 뒤에는 해당 마을의 사람들이 산송(山訟)을 말하면 서로 입을 가려서 무사한 일도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최치운(崔致云)이라는 사람이 돈을 빼앗아 먹을 심산에 온갖 방법으로 움직이다가 동생 낙주(洛柱)를 위험한 말로 겁을 주었기 때문에 철부지 생각에 목을 매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가솔(家率)이 구해주었다. 그런 뒤에 치운이 찾아와서 보고, 회복하는데 쓴다고 하여 동생이 키우던 개를 죽여서 자신이 거의 먹고 어깨 한쪽을 동생에게 주어 강제로 먹게 하였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이빨이 모두 빠진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