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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5월 2일에 최명오가 형에게 와서 말하기를, “내일 관찰사(觀察使) 이도재(李道宰)씨가 각 군을 순회하다가 본군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그대도 들었을 것이다. 내가 군수에게 그대의 말을 여러 차례 변명을 해서 군수도 그대가 죄가 없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아무 염려를 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을 닫은 이후에 외부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 최명오의 말이 이상할 뿐만 아니라 이것도 하늘의 지시라고 생각하여 낙봉을 데리고 그날 밤에 문앞을 나섰는데, 드넓은 천지에 한몸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드넓은 들판을 정처없이 가다가 10리쯤 신성리(新成里)의 족인(族人)인 재중(在中)씨의 집에 들어가서 사유를 말했더니, 재중씨가 밤에 토굴을 파서 거처하게 해주었다.
다음날 저녁에 이도재씨가 성에 들어와서 자경(子更, 밤 11~1시)이 못되어 정말로 포졸이 형의 집을 수색했는데, 간 곳을 모르기 때문에 사촌동생 낙정을 잡아갔다. 이도재씨가 말하기를, “너희 사촌형은 어느 곳으로 갔는가”라고 하기에, 낙정이 말하기를, “소생은 간 곳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도재씨가 말하기를, “이놈이 생(生, 자신을 지칭)이라니”라고 하기에, 낙정이 말하기를, “소생은 죽어도 생(生)이고 살아도 생(生)입니다”라고 하였다. 도재씨가 말하기를, “네 사촌형이 간 곳을 알려주지 않으면 곤장으로 때려 죽이겠다”고 하고 대곤(大棍)으로 8대를 때리기에, 낙정이 말하기를, “소생이 설령 사촌형제가 간 곳을 알더라도 알려주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소. 소생을 죽여주시오”라고 하니, 도재씨도 할 수 없이 풀어주며 말하기를, “네 사촌형 보고 내게 와서 자수해야 산다고 해라”고 하였다. 그 뒤에 소식을 알아보았더니, 이도재씨가 남도(南道)를 순회하여 장흥군의 이방언과 보성군의 박태로 부자 및 금구군의 김방서 등 함께 풀려난 사람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우리 형제를 때려죽일려고 부안군에 왔다고 하였다.
그 후로는 재중씨 집에 숨어 여름을 지냈는데, 고부군의 오신(梧新)에 사는 유재오(劉載午)씨와 비밀리에 연락이 되어 5일마다 한밤중에 1차례씩 찾아왔다. 평교진(平橋津) 뱃길로 다니면 말이 샐 것을 걱정하여 옷을 벗고 나루를 건너니 친구의 도리가 매우 지극하였다. 함평군의 전장섭(全章燮)도 연락이 되어 밤에 찾아왔다.
우리 형제는 함께 살다가 갑오년(甲午年, 1894) 10월에 하서면(下西面) 고잔리(古棧里) 이관수(李寬秀)의 집을 샀는데, 형편이 없었기 때문에 초가 5칸과 밭 3섬지기·논 7두락지·시장(柴場)·저전(苧田, 모시밭) 등을 엽전 250냥을 주고 이사를 하였다. 집안이 경황이 없는 중이나 농사를 많이 지었다. 한 마을에 사는 배준오(裵準五)는 갑오년의 접주로 유명하였는데 그 해 10월 중에 이관수의 흰 당나귀를 300냥에 매매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시국이 바뀌어서 당나귀는 수성군이 끌어가고 배준오는 섬으로 피신을 했다가, 을미년(乙未年, 1895) 6월에 집에 돌아왔다. 이관수가 배준오를 보고 당나귀 값을 주지 않으면 끌고가서 죽이겠다고 아무리 위협을 해도 빈손으로 갚을 길이 없어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에 어떤 사람이 전주군(全州郡)에서 와서 소문을 전하기를, “김아무개 형제가 이도재에게 자수를 했다가 어느날 시장에서 쏘아죽임을 당했는데 눈으로 차마 볼 수가 없었다”고 하였기 때문에 부내(府內)에 김아무개 형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낭자하였다. 그래서 이관수가 우리 형제가 죽은 것을 듣고 흉계를 꾸며 배준오를 보고 말하기를, “네가 낙봉의 집에 가서 낙봉의 아내에게 이관수의 당나귀값을 해줄 지경이니 댁에서 이관수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만 전해주시면 살것이니 살려달라고 하라”고 하였다. 배준오가 그것을 회피할 수가 없어 우리 집에 와서 속마음을 말하며 내 아내를 보고 이관수가 말한대로 하였더니, 내 아내가 말하기를, “남의 바깥사람이 하는 일을 간섭할 수가 없다”고 하니 준오도 부끄러워 물러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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