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에 전장섭이 올라왔다. 장섭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갑자기 풍랑이 크게 일더니 일진(一陣)의 병마 가운데에 대신사께서 계시어 공주의 금강을 건너가서 뵈었다고 하였다. 마음이 불안하여 다음날에 전장섭과 동행하여 서울에 올라갔다. 마침 그 때에 이종옥(李宗玉)씨를 만나 대신사께서는 어떻게 되었고, 대교주는 어느 곳에 계신지를 물어보았더니, 종옥이 말하기를, “대신사는 걱정이 없게 되었고, 대교주는 만나볼 길이 없으니 머무르지 말고 내려가라”고 하였다. 달리 물어볼 곳도 없어 며칠 머무르며 소문을 들었는데, 6월 2일에 대신사께서 정녕 교수형을 당했다고 하였다. 망극한 마음에 애통해하다가 수원으로 돌아왔다. 20일쯤이 되어 여비도 떨어지고 아랫사람의 인심이 어떠한지를 몰라서 김일서만 남기고 고향으로 내려보냈다. 24일에 형이 풀려나서 대신사께서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며 낯빛을 잃고 수원 남문위의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북쪽을 향해 사배(四拜)를 하였다. 1시간 동안 울고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