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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김상철이력행장
일러두기

9월, 자칭 고부(古阜) 전녹두당파(全彔豆黨派)라는 전주(全州) 전상률(全尙律), 고금(古今)과 조약(助藥)의 모모(某某) 수십 인이 완도면(莞島面) 화흥리(花興里) 서재(書齋)에서 회(會)를 열었다. 그리고 내외면(內外面)의 대소민인(大小民人)을 통청(通請, 모두 부름)하여 권고(勸告)하기를, “각처의 동학(東學)이 극심하게 창궐(猖獗)하여 만약 본소(本所)를 설립하여 교통(交通)하지 않는다면, 생민(生民)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비단 이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탐관오리와 토호(土豪)의 무단(武斷)을 금하고 제거하자는 등의 말로 회유하고 위협하니, 누가 감히 억제할 수 있겠는가? 또한 별도로 회의자리[會席]를 마련하여 임원(任員)을 선정하였던 바, 회장(會長)은 심경선(沈景善)·박내서(朴乃瑞) 두 사람이었는데, 망정(望定: 조선 왕조 때 관원 후보로 세 사람을 우선 지명하던 일)은 다 칠십 노인들이었다. 나머지 각기 직임을 정한 후에, 맨 먼저 본진(本鎭)의 이방(吏房) 김관칠(金寬七)을 압송하여 끌어내었다. 태형을 가하고 경계하는 날[笞戒之日], ≪ 나≫ 상철(相轍) 역시 참석할 것을 요청하여 갔으나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산한 후에 스스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이방이 태형을 당한 욕을 병영(兵營)에 보고하였다. 지령(指令)이 지엄하였으므로 진(鎭)이 장차(將差, 고을 원이나 감사가 심부름으로 보내는 사람)를 내어 지난날 회(會)를 열어 임명된 사람과 전주(全州)·고금(古今)·조약(助藥) 세 곳의 사람들을 탐문하여 잡아들이려고 하였는데, [그들이] 먼저 기미를 알고 도주하였다. 그래서 먼저 두 늙은 회장을 잡아 가두고 성찰(省察) 등에 임명된 사람들을 쫓아 잡으려고 장차(將差)가 촌려(村閭)에 출몰하였다. 이에 지난번 모였던 사람들은 [어떤 직임에] 임명되었건 임명되지 않았건 간에 서로 혼이 나가고 겁을 집어먹었다. 그리하여 혹자는 산림에 숨어들고, 혹자는 배를 타고 멀리 피하였다. 일이 장차 어찌될지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편안히 앉아서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관아에 머물러 있는 차유선(車由善)은 첨사(僉使)의 매부(妹夫)로서, 진(鎭)의 정사[政]가 모두 이 사람에게서 결정되었다.

≪ 나≫ 상철(相轍)은 옛적부터의 친분을 내세워 가서 고하길, “완도(莞島) 사람들은 하나도 잘못한 바가 없고, 저 세 곳의 사람들이 그들의 적을 대비하고 방어한다 하면서 회유하고 협박하며 이 모임을 설립한 것이오. 그리고 이방이 태형을 당한 욕은 저들이 저지른 행위일 뿐, 완도 사람들이 어찌 감히 이와 같은 무엄한 짓을 하였겠소? 만약 옥석을 가리지 않고 한가지로 보고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한다면, 어찌 자목(字牧, 지방 수령이 사랑으로 백성을 다스림)의 의(義)에 합당하다 하겠소?”라고 하였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설명하고, 진(鎭)의 이속(吏屬) 중에 휴이(携貳, 이견을 가짐)를 지닌 자가 있어서 차유선(車由善)을 잘 깨우쳐 임의대로 보고하지 않게 제지하고, 스스로 영(營)에 보고하여 마침내 무사히 타첩(妥帖, 별 사고 없이 일이 끝남)되었다. 이 일은 지금까지 사정을 아는 자들이 탄미(歎美)하는 바이다.

주석
본소(本所)를 설립 집강소 설치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첨사(僉使) 병마첨절제사 또는 수군첨절제사의 약칭. 여기서는 완도진의 진장인 수군첨사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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