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8월 일 전라도 경상도 각읍 격문초 [全羅道慶尙道各邑檄文草 甲午八月日]
운봉창의소(雲峰倡義所) 전 주서 박봉양은 삼가 대의(大義)로써 호남과 영남 고을에 사는 충효의 가문과 절의(節義)의 선비에게 포고한다. 오래 다스려진 나라에서는 혹 재앙이 생겨나기도 하며, 어지러운 세상에는 충의(忠義)가 드러나게 된다고 들었다. 우리 성조(聖朝)가 개국한 지 500여 년 동안 예의와 문명이 고금에 우뚝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시운이 불행하여 사악하고 어그러진 기운이 삼남(三南)에 은밀히 흘러들자, 흉악한 무리들이 요사스런 정령을 빌어서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이매(魑魅)와 망양(輞魎)이 사람의 탈을 쓰고 횡행하고 있다. 크게는 성읍에 개떼처럼 모이고 작게는 마을에서 쥐 떼처럼 와글거리는데 방백(方伯)은 벙어리 정사를 하고 있으며 수령은 자리만 지키고 있다. 국법은 기강을 잃고 천륜은 땅에 떨어졌다.
지나가면서 노략질하는 것이 적미(赤眉)보다 심하며, 참람하게 행동하는 것은 황건적(黃巾賊)보다 지나치다. 혹은 어린아이에게 홍포(紅袍)를 입혀 군대의 앞에 싣고 다니며 거짓된 말을 하니 입에 담을 수가 없고, 혹은 바위에 고전(古篆)을 새겨 거짓으로 비결을 지어 잘못된 설을 퍼뜨리니 귀로 차마 들을 수가 없다.
그 무리들을 속이고 대궐에 글을 올릴 때 자칭하여 계경(鷄京), 경주를 말함의 유생이며 서추틈(徐酋闖)으로 개명하였다고 하였으나 사실은 정씨(鄭氏)이다. 심지어 깃발에 특별히 ‘팔유대부(八酉大阝)’라고 썼으며, 서추틈의 기이한 형상을 일컬어 닭벼슬과 용비늘(鷄冠龍鱗)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어리석은 백성들을 선동하면서 꺼리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니 그 반역의 정황을 조사하면 만 번을 능지처참하여도 오히려 가벼우니 산천이 일제히 노하고 사람과 귀신이 함께 화를 낸다.
우리 조정의 여러 문무 관료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무기의 날을 세우고 깃발을 휘둘러 쉼이 없이 이들을 죽여서 멸절시켜야 한다. 그러나 성덕(聖德)이 하늘과 같이 크시어 여러 차례 은전을 내리시어 차근차근 간절하게 깨우치시어 귀순하도록 힘쓰셨으니 비록 교척(礄跖)의 마음이나 짐승의 심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반드시 감읍하여 순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역당(逆黨)들은 도리어 더욱 교만하고 횡포하여 흉도(凶徒)들을 불러 모아 남원과 전주 등 각 고을을 함락하였다. 나라 창고에 있는 무기를 빼앗아 성곽에 웅거하여 험준한 지역을 지키며 감히 호령하며, 장차 영남으로 향하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 하고 있다. 겉으로는 비록 일본을 배척한다고 하나 속으로는 반란을 도모하는 것이니 이는 참으로 충신들이 피눈물을 삼켜야 할 날이며 열사들이 쓸개즙을 맛보아야 할 때이다.
아, 우리 삼남은 특별히 200년 동안 국가의 성대한 은혜를 입었으며, 추로(鄒魯)의 습속을 권장하고 관대(冠帶)의 고장으로 대우하였다. 봉양은 충의(忠義)에서 우러나오는 격분을 이기지 못하고 장사 수천 명을 모집하였으니 모두 호남의 준걸들이다. 역당(逆黨)들과 함께 같은 하늘 아래 있지 않기로 맹서하니 호남·함양(咸陽)·하동(河東)의 의사들 중에 소문을 듣고 와서 참여한 자들이 수백 명이었다. 이들이 주먹을 어루만지고 이를 깨무니 그 형세가 마치 뇌성벽력과 같았다. 지금 날을 택하여 출정의 제사를 지내고 남쪽의 대방(帶方), 남원으로 내려갔다.
여러 읍에서 누대로 벼슬하던 집안과 훌륭한 유생들은 반드시 격분하여 의로운 전쟁에 달려와서 함께 역당을 주멸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혹 사악한 것에 미혹되고 더러운 것에 오염된 자가 있더라도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완전히 고쳐서 함께 왕실을 떠받치며 공을 세워 속죄하여 후회가 없도록 하라. 만약 미혹함에 빠져 깨닫지 못하고 역당을 도와 함께 죄를 저지르는 자가 있다면 의병이 이르는 곳에서 그를 죽이고 멸족시켜 한 점의 혈육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밖에 화적의 잔당과 가뭄이 든 지역의 유민들이 의식(衣食)을 구걸하여 잠시 역당에 붙은 자들은 모두 흩어져서 풍요로운 고장으로 돌아가서 사도(邪道)를 멀리하여 각자 남은 목숨을 보전하여야 할 것이다. 역괴(逆魁)의 수급을 베어 바치는 자에게 백금을 상으로 내릴 것이며 어리석은 백성들을 선도하고 충효로써 깨우쳐서 역당을 해산시키는 자에게는 천금을 상으로 내릴 것이다.
격문이 도착하는 날에 여러 읍의 수령과 충효로운 선비들은 즉시 출발하여 함께 본읍으로 와서 제단을 마련하여 맹약을 하고 힘과 마음을 하나로 하여 적도를 토벌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격문을 각 읍으로 차례차례 전달하여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면 매우 다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