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선생 표해록을 읽고[讀錦南先生漂海錄]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곳에서 아홉 번을 죽을 지경에 처했어도 우뚝하니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평소에 마음을 수양하지 않았다면 가능하겠는가? 천하의 물은 바다보다 큰 것이 없다. 고래같은 파도와 악어처럼 사나운 풍랑 및 만경(萬頃)의 푸른 바다는 배를 띄울 뿐만 아니라 전복시킬 수도 있다. 바람에 표류(漂流)되어 고기밥이 된 자로 몇 명의 굴삼려(屈三閭)가 있는지를 모를 것이다.
금남(錦南) 최선생은 임금의 명을 받아 남해(南海)를 건넜다가 상(喪)을 당해 배를 돌릴 때에 바다가 미친 것처럼 폭풍이 크게 일어났다. 나뭇잎 하나처럼 작은 배가 풍랑에 시달리어 돛대가 꺾이고 노는 잃어버려 의지하여 정박할 곳이 없고,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며, 가는 곳이 몇 리(里)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함께 배를 탔던 43명이 모두 하늘을 향해 통곡을 하였는데 참담하여 사람의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선생만이 배안에 단정히 앉아 죽음을 돌아가는 것처럼 여겼고, 말이 태연자약하며 행동거지가 평소와 같고 미간(眉間)에 체념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이단지(李端之)가 편안하게 집에 있는 것처럼 독서하는 것과 서로 비교하기에 충분하였다. 하늘이 이 사람을 내었는데, 바다가 어찌 몸을 해칠 수 있고 바람이 어찌 배를 뒤집을 수 있겠는가? 하늘의 돌보심이 매우 밝아 남쪽으로 명나라의 태(台, 산동성 남쪽)땅에 정박하여 만 리를 걸어 황궐(皇闕)에 가서 인사를 하고, 명나라의 많은 선비들과 의리(義理)를 강구(講究)하였다. 읍양(揖讓)하며 오르고 내려가는 것이 모두 법도(法度)에 맞으니 그것을 보는 자가 예의(禮義)의 나라에 예의가 있는 선비로 지목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것은 나라를 빛내기에 충분하였다. 명나라에서 돌아와 한양의 청파역(靑坡驛)에 도착한 때가 무신년(戊申年, 1488) 6월 14일 이었다.
이 기록은 선생이 임금의 명을 받아 글을 지어서 올린 것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철인(哲人)이 어찌 한도가 있겠는가? 그러나 온전히 죽은 자가 많지 않으니 하늘이 어찌 고의로 그런 것이겠는가? 선생이 겨우 남해(南海)에서 죽음을 피했으나 끝내 불행하게도 무오사화(戊午士禍)를 당했다. 아! 애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