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 임조를 애도하는 제문 [祭林文哉藻文]
내가 옛날에 귤파(橘坡)선생에게 배웠는데, 선생은 문헌(文獻)이 있는 오래 된 집안에서 태어난 강호(江湖)의 큰 선비였다. 시(詩)와 예(禮)에 있어 남긴 업적은 왕씨(王氏)의 구물(舊物)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고, 공(公)은 무(武)도 이어받아 남쪽에서 이름이 났다. 아이들이 군(君)을 칭송했는데, 어찌 지난 시대에만 그치겠는가? 더욱이 공(公)은 진실로 효성이 타고나서 부모를 섬기는 도리는 마음과 물건에서 빠짐이 없었다. 부모가 죽은 뒤에도 초하루와 보름에 반드시 무덤에 가서 배례(拜禮)를 했는데, 이것이 어찌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 비록 옛날이 돌아와서 그것을 실천하더라도 현명함이 이것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운명이 원수와 모의하여 60이 넘은 나이에 일개 포의(布衣)에 그쳤으니, 아! 애석하다! 정유년(丁酉年, 1897) 겨울에 육영재(育英齋)에서 나눈 한 잔의 술이 어찌 영영 이별일 줄을 알았겠는가? 그때 이후로 끝내 다시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부음(訃音)이 갑자기 이르렀다. 병이 어찌 그리 급박한가? 장례(葬禮)가 언제인지 몰라서 1폭(幅)의 글도 짓지 못하였으니 평소에 말하던 두터운 정(情)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햇수가 바뀌었으나 슬픔을 의탁할 한마디 말이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짧은 글을 감히 짓는다.
염라대왕에게 말해 나그네를 돌려달라 하면
천대(泉臺, 저승)가 영영 적막해지지 않으리라.
가는 것도 순조롭고 오는 것도 때에 맞았으니
요동(遼動)은 천년 동안 한가롭게 학(鶴)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