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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5월 작은 달[五月小]

초 1일

아침 일찍 곡답에 갔다가 왔다. 일기가 맑았다. 오시에 논을 매는 사람들에게 밥을 내갔다. 미시에 또 오전(五田)의 전평(前坪)으로 갔다. 판에 이앙하고 왔다. 날씨가 맑았다. 신시(申時, 오후 3∼5시)에 해가 비치는 맑게 갠 하늘에 우레가 조금씩 쳤다. 이날 고부민들이 민란을 일으켜 전주성(全州城) 안을 침범하였고, 감사가 피하여 도망갔다고 운운하는 것을 들었다.

초 2일

하루 내내 날씨가 맑았다. 참외 밭에 가서 황승(黃蠅)을 잡고 왔다. 또 오전의 전평으로 가서 뚝을 쌓고 왔다. 곡답에 가서 물줄기를 살피고 왔다.

초 3일

하루 내내 날씨가 맑았다. 참외 밭에 가서 파리매를 잡고 왔다. 오후에는 가라두에 가서 담배 이랑을 파고 왔다.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초 4일

가락암(可樂岩)에 참외 밭에 일찍 가서 파리매를 잡고 왔다. 하루 내내 날씨가 맑았다. 참외 밭에서 삽질을 했다.

초 5일

참외 밭에 일찍 가서 파리매를 잡고 왔다. 하루 내내 날씨가 매우 맑았다. 이날 밤 성북의 아버지께서 잠시 복통을 해서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가 다시 잤다.

초 6일

일찍 보리타작을 하고, 참외 밭에 일찍 가서 파리매를 잡고 왔다. 날씨가 맑고 찌는 듯 무더웠다. 저녁 무렵 구름이 깊게 깔리고 비가 서서히 뿌리다가 밤에 비가 더욱 많이 내렸다.

초 7일

담배를 뒷산 가라두로 옮겼다.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더욱 습기가 많고 이슬이 생겼다. 하루 내내 맑았다가 흐렸다가 비가 왔다 개였다.

초 8일

오전의 전평으로 가서 이앙한 것을 보았다. 오전의 이계학(李啓學)을 만나 ‘조선명현사적(朝鮮名賢事蹟)’을 이야기했다. 계학이 말하기를, “중국의 공자(孔子)는 공자이고, 우리나라의 공자는 최자(崔子)이다. 그는 곧 고운(孤雲) 문창후(文昌侯)이다. 운운”이라고 하였다. 하루 내내 날씨가 맑고 구름이 없었다.

초 9일

날씨가 맑고 따스했다. 참외 밭에서 김을 매고 구덩이를 팠다. 그 가운데에 집어넣으려는 것이다. 이날 성북의 아버지께서 몸이 조금 평안하지 않으셨다.

초 10일

날씨가 희미하였다가 맑았다. 오후에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흩어졌다. 또 참외밭에서 김을 맸다. 처음의 것은 9경(傾), 다음은 또한 11무(畝)를 경작 하려는 것이었다. 초저녁에 원산에 갔다가 왔다.

11일

일찍 식사를 한 후 보리타작을 했다. 날이 어두컴컴하였다가 오래지 않아 비가 왔다. 또 자주 비가 왔는데 물을 쏟아붓는 듯이 내렸다. 저녁 무렵 날이 매우 어두컴컴하였으나 비가 오지는 않았다.

12일

비가 왔다. 날씨가 흐릿하였다. 담배뿌리를 가라두로 옮겼다. 그 때 비가 오는 것을 무릅쓰고 삿갓을 썼다. 또한 바람이 크게 불어서 하루 내내 그치지 않았고 밤이 되어서야 그쳤다.

13일

날씨가 조금 개었으며, 비는 오지 않았다. 뒷 개천에 가서 통발을 놓아 작은 물고기들을 잡았다. 저녁 무렵 참외 밭에 가서 정묘(正苗)를 꺾어주고 왔다. 밤에 가락암에 가서 놀았다.

14일

일찍 비가 오다가 오래지 않아 그쳤다. 오후에 날씨가 맑고 구름이 흩어졌다. 내 할아버지께서 신곡(新谷)의 유심(有心) 이배설(李倍稧)의 집에 갔다. 원산의 이무경(李茂景)도 또한 참석하였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유인(儒人) 운운”이라고 하였다. 이무경이 말하기를, “너는 교노(校奴, 향교에 속한 노비)인데 어찌하여 유인이라 하는가?”라고 하였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교생(校生)이 어찌 노(奴)란 말인가?”라고 하였다. 이무경이 말하기를, “나는 교노에게 보낸 글을 보았다”라고 하였고, 또한 놈이라 부르고 패악을 저지름이 가장 심하였다. 저녁 무렵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불초 손자인 내가 이를 듣고 매우 원통하고 분하여 이 글을 써서 훗날 원통함을 갚기를 바란다.

15일

일찍부터 구름이 끼고 비가 크게 왔다. 바람 또한 크게 불었다.

16일

일찍부터 비가 크게 왔다. 하루 내내 매우 날씨가 크게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17일

구름이 흩어져 날씨가 조금 맑았다. 뒷 개천에 가서 통발을 설치하고 왔다. 날씨가 매우 맑았다.

18일

일찍부터 구름이 일고 다시 흩어졌다. 날이 점차 밝아지자 요곡에 가서 친척아저씨(族叔)인 영학(榮鶴)씨 집에서 『율암충의공치제편(栗庵忠毅公致祭篇)』 1권을 얻어서 왔다. 저녁 해질 무렵 구름이 많이 끼고, 밤에는 비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19일

하루 내내 구름이 짙고 비가 왔다. 나는 진흙 벽을 칠했다. 날씨가 흐려서 맑지 않았다.

20일

일찍 신곡에 갔다. 오후에 밀을 벤 후에 반전(盤田)에 콩을 심었다. 아침 일찍 날씨가 조금 맑았다가 맑아졌다. 저녁 무렵 구름이 모여 날씨가 흐린듯하였고, 비가 내렸다. 밤에 비가 왔다.

21일

아침 일찍 날씨가 맑았다. 갈공(乫公)에 가서 유초(油草)의 싹을 옮겼다. 또한 반전의 콩밭으로 옮겼다. 오시에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집에 들어갔다. 오후에는 요곡으로 가서 허문(虛門)에 들렀는데, 염치명(廉致明)을 만나지 못하고 왔다.

22일

아침 일찍 갈공에 가서 또 유초의 싹을 옮기고 왔다. 날씨가 매우 맑았다.

23일

하루 내내 날씨가 매우 맑았다. 참외 밭에 갔다가 왔다. 오후에 뒷 개천에 가서 통발을 놓아 물고기를 잡아 왔다. 밤에 이슬비가 내려서 잠시 습하였다.

24일

하루 내내 날씨가 따뜻하고 맑았다. 오후에 또한 뒷 개천에 가서 물고기들을 잡고서 왔다.

25일

아침 일찍 집에서 보리를 타작하였다. 날씨가 매우 맑았다. 비로소 수박 2개를 따서 신명(神命)에게 바쳤다.

26일

하루 내내 날씨가 매우 맑고 따뜻했다. 오후에 참외 밭에 가서 수박 3개를 따 왔다. 정내원(鄭乃元)이 문 앞에 도착하여 야헌당(野軒堂)으로 찾아 들어왔다.

27일

아침 일찍 날이 조금 맑았다. 오후에 요곡에 갔다. 종형과 함께 뒷 개천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다. 그 때 날이 어둡고 가늘게 비가 오다가 퍼붓듯이 내렸다. 저녁 해가 질 무렵 집에 들어갔다.

28일

아침 일찍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월천(越川)의 곡답에 가서 김을 매고 모를 심었다. 오후에 전라도 경계에 소나기가 오고 어지럽게 내리는 것을 앉아서 바라보았다.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해질 무렵에 농부들이 집으로 들어와 보리를 타작하였다.

29일

아침 일찍 날씨가 흐릿하고 가랑비가 내리고 바람 또한 불었다. 참외 밭에 갔다. 수박을 대바구니[] 1개 정도에 담을 만큼 따 왔다.

주석
고운(孤雲)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 857(문성왕 19)∼?)이다. 신라 하대의 학자·문장가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다. 신라 6두품(六頭品) 출신으로 신라의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으며, 귀국 후 난세를 비관하여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계원필경(桂苑筆耕)』 20권, 「난랑비서문」 등 다수의 저술이 있다.
『율암충의공치제편(栗庵忠毅公致祭篇)』 조선 후기의 문신인 박제관(朴濟寬)을 치제한 여러 사항을 담은 책. 박제관은 동래부사 충청도와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명신이다.
성(箵)은 대나 짚으로 만든 입구가 좁고 밑이 넓고 바닥은 네모꼴인 것으로 작은 대바구니의 형태를 띤 것이다. 종다래끼라고 하며, 영(笭)으로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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