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작은 달[六月小]
초 1일
비가 뿌리듯이 내렸다. 날씨가 맑지 않았으며, 또한 조금은 맑았다.
초 2일
날씨가 흐렸다가 또한 맑았다. 아침 일찍 장맛비가 내렸으며, 혹은 바람이 불었다. 방을 청소하고 좀을 제거하였다.
초 3일
아침 일찍 비가 왔으며,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홍산 선동에 사는 처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해질 무렵에 날씨가 맑았다. 방을 도배하였다.
초 4일
아침 일찍 장맛비처럼 비가 뿌리듯이 내렸다. 오전에 한 아이가 홍산 선동에서 왔다. 처의 할머니 청송(靑松) 심씨(沈氏)의 부고만을 알리기 위하여 온 것이다. 오후에 나는 곧바로 홍산으로 가서 처의 할머니를 조문하였다. 밤에 머물러서 잠을 잤다.
초 5일
이날 사시에 발인하여 마을 앞에서 멀리 떨어진 자그마한 산기슭에 장사지냈다. 날씨가 매우 맑고 따뜻했다. 저녁에 장인을 따라서 빈소로 가서 절을 하고 조문하고 돌아왔다. 오후에 두꺼운 흰 종이 2권을 다듬어 두루 사용할 두루마리 종이를 만들었다.
초 6일
하루 내내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오시에 때때로 비가 쏟아지는 듯이 왔다. 대개 잠깐 온 비였다. 밤에 바람이 불고 비가 쓸쓸하게 내렸다.
초 7일
아침 일찍 비가 뿌리듯이 내렸다. 처조부를 따라서 삽교(揷橋)에 가서 물고기 20∼30마리를 잡아 왔다. 오후에 선동에 갔다가 집에 도착하였는데, 날씨가 점차 맑아지고 따뜻해졌으며 구름은 흩어졌다. 밤에 천봉(天鳳)의 집에 가서 종조부의 제사를 살펴보았다. 제물을 마련하고 제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왔다. 이날 밤에 몸이 조금 편안하지 못하여 설사를 했다.
초 8일
아침 일찍 날이 맑았다. 설사를 했다. 하루 내내 맑고 따뜻했다.
초 9일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아침 일찍 익모초(益母草) 즙을 마셨다.
초 10일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바람이 설설 불었다. 비로소 오두막을 만들었다. 아버지와 종형과 내가 함께 힘쓴 것이다. 아침 일찍 익모초 즙을 마셨다. 밤에 외조모의 제사에 참석했다.
11일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아침 일찍 마거(麻車)에 가서 『공자통기(孔子通記)』 3권을 전했다. 곧바로 고음당(古音堂)에 가서 박인화(朴仁和)의 동생을 만났다. 또한 진사 권영호(權永頀)를 만나서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였다. 또한 신기(新基)에 가서 권철수(權徹洙)를 만났다. 또한 보애(寶崖)에 가서 청사(晴沙)를 만나고 왔다. 오전(五田)에 들어가서 윤오하(尹鰲下)를 만나고 왔다. 밤에 삼종숙모인 장성(長城) 서씨(徐氏)의 대상(大祥)에 참석하였다. 달빛이 매우 밝았다.
고음당(古音堂)에 가서 권운남(權雲南)을 만날 때 두 사람이 있었다. 문에 들어갔더니 이들은 오(吳)씨 성을 가진 선비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말하기를, “경성에 지금 큰 난리가 일어났다. 일본군과 청군이 성 밖과 성 안으로 나뉘어 진을 치고 있다. 일본인이 은밀히 간계를 내어서 조선을 추대하여 황제로 삼아 청을 배반하게 하려고 하니, 이는 일본의 간계에 빠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12일
하루 내내 날씨가 매우 더웠다. 오두막에 갔다가 왔다. 해가 질 무렵 산에 올랐다. 밤에 뜬 달의 색이 매우 맑았다.
13일
하루 내내 따뜻하고 더웠다.
14일
하루 내내 날씨가 매우 더웠다.
15일
하루 내내 날씨가 따뜻하고 맑았다.
16일
참외 2개, 수박 20개, 닭 1마리를 원산 오선달(吳先達)의 집에 있는 남궁(南宮)씨의 대상(大祥)에 부의(賻儀)로 보내고 제사에 참석했다. 아침 일찍 송산(松山) 사곡(思谷)에 갔다가 왔다. 원산에 들어갔다. 구름이 끼었고 조금 어두웠다.
17일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이날 학교(鶴橋)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이날 밤 처음으로 오두막에서 잠을 잤다. 달빛이 매우 밝았다.
18일
날씨가 매우 따뜻했다. 오후에 물고기를 잡아 집으로 왔다. 소나기가 오다가 그쳤다. 해질 무렵 맑았다. 밤에 최덕수(崔德壽)·윤여길(尹汝吉)을 만나서 서로 기생을 희롱하였다.
19일
바람이 불고 날씨가 따뜻하였다. 혹 소나기가 내리다가 잠시 멈추었다. 날씨 또한 맑았다.
20일
바람이 불고 날씨가 따뜻하였다. 혹 소나기가 내리다가 잠시 멈추었다. 날씨 또한 맑았다.
21일
바람이 불고 날씨가 따뜻하였다. 혹 소나기가 내리다가 잠시 멈추었다. 날씨 또한 맑았다.
22일
아침 일찍 소나기가 내렸고 갑자기 번개가 치다가 천둥이 쳐서 천지가 매우 엄숙해졌다. 이때 내가 변응천(邊應天)과 함께 오두막에 함께 앉아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나만 혼자 오두막에 있는 줄 알고 삿갓 1개를 가지고 비가 오는 것을 무릅쓰면서 오두막에 오셔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아들 사랑이 이와 같았다. 비가 그치고 천둥이 그쳤다. 오후에는 날씨가 맑았다.
23일
바람이 조금 불었으며, 날씨가 또한 맑았다. 소나기가 내렸으며, 혹 바람이 불다가 멈추었다.
24일
날씨가 매우 맑았다. 밤에 바람이 약간 불었다.
25일
날씨가 매우 맑았다. 아침 일찍 오두막에서 왔다. 이때 윤상인(尹相寅)이 윤동의 접(接)에서 입도(入道)했다고 들었다. 돌아가신 홍산 처 할머니가 널리 퍼뜨렸다. 해가 질 무렵에 도인(道人)들이 김운화(金雲化)와 박윤화(朴允化) 부자(父子) 등 3명을 시장 터로 잡아갔다.
26일
날씨가 매우 맑으며 따뜻했다. 아침 일찍 도인들이 가락암으로 윤주세(尹周世)와 박사희(朴四喜)를 잡아 오는 것을 보았다. 이는 내가 오두막에 앉아서 보았다. 오후에 소나기가 크게 내렸다. 해가 질 무렵 성북의 아버지와 함께 사곡에 가서 서당(西塘) 권종희(權鍾熙)의 대상을 조문하고, 와가(瓦家)로 가서 호운(湖雲) 윤상필(尹相弼)을 만나고 왔다.
27일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오시에 이천조(李天祖)가 보낸 동자(童子) 편에 들었는데, 도인들이 가락암에 모였으며, 윤동에 사는 김도인(金道人)이 내 백부(伯父)의 산소를 파내려고 아버지와 종형을 잡으려 했는데, 동자가 곧바로 알려 피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두막에서 곧바로 집으로 달려 들어갔으며, 구전(狗田)의 오두막으로 가서 종차형(從次兄)을 불러서 그러한 일의 연유를 말씀 드리고 먼저 피하게 하였다. 또 요곡에 갔다가 왔다. 장차 윤동으로 가서 접주 김시형(金時亨)을 보려고 하였다. 원산 앞에 도착하니 도인들이 사곡의 윤진사 집으로 들어가는 자가 많았다.
나는 아버지께서 이미 사곡으로 갔으니, 만일 도인을 만나게 되면 모두 잡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빨리 달려 사곡으로 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미리 알고서 피하셨다고 한다. 말을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도인들이 과연 문에 이르렀다. 나는 모퉁이에 있는 굴뚝에서 천천히 달려서 사곡의 산을 넘어 윤동으로 들어갔다. 접주 김시형을 만나서 이와 같은 일의 연유를 말하기를, “선생께서 저의 아버지가 잡혀가는 화를 막아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김접주는 곧바로 아들 김재봉(金在鳳)을 시켜서 말하기를, “너는 지금 가락암으로 가서 김도인에게 야인리(野仁里)의 최응기(崔應基)가 어제 밤에 입도했으니 잡아와서는 안 된다”라고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야인리에 먼저 들어간다면 너는 곧바로 돌아오고, 곧바로 내게 알리라. 내가 사통지(私通紙)를 부쳐줄 것이니 야인의 일을 보라”라고 하였다. 이윽고 나는 재봉과 함께 왔다. 나는 원산에 들어가서 몸을 피하였다. 김재봉은 가락암으로 들어가서 도인들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서 이러저러해서 야인리 최씨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라고 운운하였다. 도인들이 원산으로 들어가서 이학용(李學鎔)의 집을 부숴버렸다. 또 이순백(李順伯)을 잡아서 때리고 말하기를, “네가 춘백(春伯)과 무경(武京)을 찾으면 화를 면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춘백과 무경은 찾지 못하고 순백을 풀어주었다. 날이 이미 저물자 도인들이 윤동으로 갔다. 우리 집에만 들어오지 않았는데, 대개 김접주의 공이다. 밤에 비가 왔으며, 우레가 치다가 그쳤다.
28일
매우 이른 아침에 백종형(伯從兄) 12촌 대부인 억보(億甫)와 함께 윤동에 가서 김재봉을 만나 종형 대부가 오늘 저녁 입도하는 것에 대해 말하였다. 김재봉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자”라고 하였다. 이윽고 돌아 와서 오두막에 들어갔다. 우리 집에 갔다가 허문(虛門)에 가서 이광순(李光順)을 만나고 함께 왔다. 오전의 오두막에서 오이를 먹었다. 또 우리 집으로 갔다가 오두막으로 갔다. 해가 질 무렵 이광순과 함께 뒷 개울에서 목욕하고 작별하고 왔다.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이날 저녁에 종형 최응기가 윤동접(允洞接)에 입도했다. 밤에 소나기가 내렸고 잠깐 동안 비가 많이 내렸다.
29일
하루 내내 맑고 따뜻했다. 오후에 도인들이 이학용·무경을 잡아서 가락주점(可樂酒店)에 들어와 죄를 다스렸다. 밤에 동촌(東村)에 있는 신기(愼基)의 어머니 제사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