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큰 달[七月大]
초 1일
하루 내내 따뜻하고 더운 것이 더욱 심하였다. 밤에 백부(伯父) 약동공(藥東公)의 제사에 참석했다.
초 2일
새벽. 하루 내내 무더운 것이 어제와 같았으며 더 심하였다.
초 3일
날씨가 따뜻하고 더운 것이 더욱 심하였다. 오곡(烏谷)의 도인들이 이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모두 51상(床)이었다.
초 4일
가뭄이 매우 심하였다. 전라(全羅)의 도인들이 사곡에 있는 윤진사 집에 들어가서 총을 빼앗는다고 말했는데 매우 시끄러웠다. 가락암을 지나 야인의 이재천(李在天)의 집에 들어갔다가 물러갔다.
초 5일
날씨가 따뜻하고 더웠다. 사곡의 윤상필 형제가 하루 내내 이재천의 집에 머물렀다.
초 6일
날씨가 따뜻하고 더웠다.
초 7일
날씨가 무더웠다. 밤에 할머니 윤씨(尹氏) 부인(夫人)의 제사에 참석했다. 밤이 될 무렵 공준(公俊)과 더불어 놀았다.
초 8일
날씨가 무더웠다. 아침 일찍 요곡에 갔다. 구전(狗田)의 과정에서 왔다. 밤에 종조모(從祖母)이신 방씨(方氏) 부인의 제사에 참석했다.
초 9일
새벽. 무더웠다. 오시에 날이 맑았으며 비가 조금 뿌렸다가 곧 멈추었다. 또한 도인들이 오전의 이사진(李士眞)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 신곡에 잠시 들렀다가 갔다. 밤에 오두막에 있으면서 도인들이 사곡에서 가락암을 지날 때 횃불을 밝힌 것을 보았다.
초 10일
하루 내내 매우 맑았으며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혹 미세하게 불기도 했다. 아침 일찍 마양(馬陽)에 가서 조선비(趙雅)를 만났다. 또한 원익상(元翼常)을 만나 오두막에 함께 가서 놀았다. 오후에 사곡에 들어갔으나 만송(晩松)을 만나지 못하고 왔다. 밤에 신곡에 사는 이선경(李善景)을 만나고 오두막에 와서 말하기를, “도인들이 지금 신곡에 들어 와서 크게 난리를 일으켰는데, 이를 오두막에서 도인이 함께 가서 말하여 안정시켰다”라고 운운하고 곧바로 갔다. 백성들이 비가 오지 않아 콩과 팥이 마르는 것을 걱정하였다.
11일
날씨가 따뜻하고 맑았다. 오후에 산에 올라 선조들의 묘를 살피고, 문득 신곡 앞에서 요곡의 접(接) 도인 수십 명이 조포(租苞, 벼가마) 3석 문제로 이선경을 잡아가는 것을 보았다.
12일
하루 내내 따뜻하고 맑았다. 요곡에 갔다가 왔다. 구전의 오두막에 갔다가 왔다.
13일
날씨가 따뜻하고 맑았다. 사곡에 가서 권택수(權宅洙)를 만났다. 하루 내내 이야기하고 왔다. 총을 쏘는 도인의 소리를 들었다. 이 때 큰 난리가 일어날 것 같았다. 이날 밤 성북의 아버지께서 윤동 김희만(金熙萬)의 접(接)에 입도하셨다.
14일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구전의 오두막에 갔다. 또한 도랑을 터서 물을 대었다. 이날 오후에 참외와 여주(苦苽)를 모두 따고 밭을 거두었다.
15일
새벽. 날씨가 매우 가물었다. 하루 내내 따뜻하고 맑았다. 도인 1만여 명이 본읍에서 도회(都會)를 열어 서천(舒川)의 김찬여(金贊汝)를 죽였다고 한다.
16일
날씨가 매우 맑았다. 오후에 이슬비가 내렸으며, 잠시 지나듯 하다가 멈추었다. 물고기를 잡았다. 밤에 구름이 많이 끼었다.
17일
날씨가 매우 맑았다. 도인들이 가락암에서 도회를 열었으며, 홍산 □□으로 물러갔다고 한다. 총을 쏘아 시끄러웠다. 밤에 구름이 많이 끼었다.
18일
아침 일찍 구름이 많았다. 보애(寶崖)로 갔다. 마곡(馬谷) 윤억(尹檍)의 집에 들어갔다가 소나기를 만나 잠시 쉬었다. 보애로 물러가서 청사(晴沙)를 만나 그의 아들 혼인으로 1냥을 주었다. 오는 21일이다. 오후에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였다. 이날 밤에 비가 또 왔으나 많지는 않았다.
19일
하루 내내 구름이 끼었다가 이어서 날이 맑았다. 여러 차례 오전의 논에 가서 물을 주었다.
20일
아침 일찍 날이 맑았다. 혹 구름이 끼어 흐리기도 했다. 오후에 바람이 불었다. 해가 질 무렵 구름이 끼어 흐렸다. 몇 차례 오전에 가서 논에 물을 주었다.
21일
아침 일찍 구름이 심하게 껴서 어두웠다. 사곡에 갔다. 이날은 청사 선생의 아들이 혼인하는 날이다. 사곡에 간 지 오래지 않아 비가 쏟아지듯이 내렸다. 의정부 관문(關文, 공문)을 보고 문벌을 타파하고 반상을 없게 하는 것과 다른 여러 조건들을 알게 되었다. 해가 질 무렵 비가 조금 내리다 그쳤다. 나는 돌아왔다. 아침 일찍 사곡으로 갔을 때, 윤동접의 도인들이 이시형(李時衡)을 잡아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구해주기 힘들다고 말하였다.
22일
새벽부터 사시까지 비가 쏟아지듯이 내렸다. 동쪽 구릉에 떨어진 산자락에 올라 사방을 살폈다. 개천이 크게 불어서 다수의 하천 제방이 허물어졌는데, 모두 수재를 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쳐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견디지 못하였다. 밤에 앞에 있는 들에 가서 게를 잡았다.
23일
날이 어둡고 가랑비가 내렸으며 혹은 습하기도 했다.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어제 밤에 이재천이 내게 함부로 말하기를, “너는 어떤 사람인데 동학에 들어오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아들 경천(敬天)의 편에 들은 것이다.
24일
송산에 갈 때에 먼저 포계(圃溪)의 산소를 살폈다. 박용희(朴龍熙)를 만났으며, 사곡(思谷)에 들어갔다. 오후에 비가 갑자기 쏟아져서 사곡에서 잤다. 택수(宅洙)가 나를 붙들어서 가지 못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25일
날이 매우 맑았다. 다시 도인들이 택수의 집에 들어갔다가 물러가는 것을 다시 보았다. 오후에 집에 왔다.
26일
아침 일찍 밥을 먹고 사곡에 갔다가 물러 나왔다. 날씨가 맑았다. 약간의 이질(痢疾) 기운이 있었다.
27일
아침 일찍 사곡에 갔다. 석계원(石桂元)과 작별하였다. 또 송산에 가서 승수(丞壽)를 만났다. 승수가 말하기를, “너는 함록(函錄, 명단을 적은 문서)을 가지고 다음 달 초 2일에 향교에 들어가는 것이 어떤가?”라고 하였다. 내가 답하기를, “그렇게 하겠다”라고 하고 물러 나왔다.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28일
아침 일찍 요곡에 가서 율암(栗菴)의 『치제문(致祭文)』 1권을 전하고 왔다.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29일
하루 내내 새를 쫓아내고 신발을 지었다. 날이 맑았으며, 밤에는 부슬비가 와서 습하였다.
30일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새를 쫓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