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큰 달[十二月大]
초 1일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아침에 비가 내렸다. 아침이 지난 후 비와 눈이 흩날렸다. 날씨가 매우 어두워졌고 천지가 어두컴컴하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날렸다. 밤에 소죽과 함께 술을 마셨다. 눈길을 밟으면서 각각 시를 읊었다. 석댁에서 나흘째 잠을 잤다.
초 2일
일찍부터 산천이 모두 하얗다. 눈이 사방의 들판과 산에 쌓여 있다. 하루 내내 바람이 불고 눈이 흩날리다가 혹 그쳤다. 오전에는 복룡과 놀았으며, 닷새째 잠을 잤다.
초 3일
날씨가 비로소 맑았다. 서재에 나 있는 창으로 눈이 내리고 개는 것을 보았다. 이른 아침이 지나 성북의 아버지께서 야인리에 있는 본댁으로 가셨다. 석댁에서 엿새째 잠을 잤다.
초 4일
하루 내내 매우 맑은 것이 어제와 같았다. 처갓집에서 이레째 잠을 잤다.
초 5일
날씨가 어제와 같았다. 처가에서 여드레째 잠을 잤다.
초 6일
날씨가 어제와 같았다. 일찍 석롱·소죽·복룡과 작별하고, 선동에서 야인리에 이르렀다. 할아버지 야헌 어르신께서 그간 몸이 평안하지 않으셨는데 지금도 여전하시었다. 아버지 성북께서 집에 계시지 않으시고 나갔다 돌아오셨다.
초 7일
날씨가 맑고 또한 흐릿하였다. 바람이 조금 서늘하였다. 이날 저녁 증조모 유씨(劉氏)의 제사에 참석하였다. 저녁이 질 무렵 아버지께서 집에 도착하셨다.
초 8일
날씨가 조금 추웠다가 매우 추웠다. 할아버지를 위해 집의 개를 잡아서 잡수시게 하였다.
초 9일
바람이 불어 조금 추웠다가 매우 추웠다.
초 10일
집에서 홍산으로 갔다. 그 때 마가산(馬駕山)에 올라서 풍경을 즐기고 시를 읊었다. 갑자기 구름이 끼어 어두워졌으며,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얼굴에 눈이 내려 그 때문에 선동으로 들어갔다. 이 보다 앞서 길을 가면서 한 절(絶)을 불렀다. 이날 밤 선암(仙岩)에서 잤다.
11일
일찍 안개가 끼었다. 하루 내내 눈이 내렸고, 혹 바람이 불어 흩날리기도 했다. 저녁 무렵 또 눈이 내렸으며, 밤에 눈이 왔다.
12일
일찍 안개가 끼었다. 이복룡의 아이와 함께 놀았다.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13일
일찍 안개가 끼었다. 날씨가 혹 맑았다가 혹 흐렸다. 사시에 동족 경구씨가 처갓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오후에 헤어졌다.
14일
날씨가 매우 맑았으나, 제대로 좋은 것은 아니다. 이날 감기 때문에 내 몸이 다소 편안하지 않았다. 선암에서 닷새째 잠을 잤다.
15일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봉선(逢仙) 역곡(易谷)의 김재하(金在河)와 함께 놀았다. 밤의 달빛이 매우 밝았다. 곧 작별하였다.
16일
새벽. 날씨가 어제처럼 갑자기 추워졌다. 밤의 달빛이 매우 밝았다. 머리가 조금 아팠다가 다음 날 나았다.
17일
일찍부터 날이 맑았다. 추운 기운이 있었다. 해질 무렵 서천의 황동(篁洞)에 사는 주석사(朱碩士)와 더불어 이야기했다. 주석사가 말하기를, “어제 밤 달이 높이 떴고, 하얀 무지개가 십자 모양으로 달을 꿰뚫어서 처마를 지났으니, 달이 마치 4조각 난 것 같았다”라고 운운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이는 어찌 하늘의 변괴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윽고 성리(性理)의 설(說)을 말했다. 오시에 복룡과 함께 놀았다.
18일
날씨가 차고 맑았다. 나는 저녁 무렵 때에 처가의 『세보(世譜)』를 보는 것을 즐겼다. 탁영(濯纓) 문민공(文愍公)은 내 7대 조모의 5대조이시다. 선암(仙岩)에서 아흐레째 잠을 잤다.
19일
이른 아침이 지나 선동에서 곧바로 왔다. 청등령(靑燈嶺)을 넘어서 야인리에 들어가니 내가 사는 곳이다. 일찍 처조부와 함께 작별하였다. 처조부는 며칠 동안 신음하였으나 병이 낫지 않았다.
20일
일찍 날씨가 조금 추웠다.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덕봉의 아이와 함께 현미(玄眉)에 갔다. 박성유(朴性裕)의 집에서 책농 3개를 찾았다. 또 박사원(朴士元)을 만나고 왔다. 대개 전날 병란(兵亂)이 있을 때에 책궤를 옮기고 지금 이에 찾아 온 것이다. 날씨가 매우 맑았으며, 서늘하고 추웠다. 밤이 되자 천둥이 조금 쳤다.
21일
날씨가 비록 맑았으나 추웠다.
22일
하루 내내 날씨가 맑고 추웠다.
23일
날씨가 춥고 맑았다. 바람이 간혹 불기도 하였다. 이 날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함께 요곡으로 집을 옮겼다. 옛날에 종형이 살던 집이다.
24일
날씨가 춥고 맑았다.
25일
일찍 오전리에 갔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바람이 혹 조금 불었으나, 날씨가 매우 맑았다. 밤에 성북의 아버지께서 시를 읊으셨다.
26일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고 매우 맑았으나, 차가운 기운이 또한 일어났다. 이 날 ‘옥편도서(玉篇圖書)’를 새기고, 갓끈 주머니에 넣었다.
27일
날씨가 흐릿하여 맑지 못하였다. 갑자기 추워져 어제 해가 질 무렵과 같았다. 지호의 외당숙 건오(建五)씨가 오셔서 우리 집을 찾으셨다. 이윽고 머물러 자고 다음날 가셨다. 이 날 밤에 눈이 크게 내렸으며 또한 곱게 내려서 금년 겨울에 내린 눈 중에서 가장 나았다. 이 날 오전리 이정범(李政範)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28일
일찍부터 산천에 모두 하얗게 눈이 내렸는데, 쌓인 모습이 마치 옥(玉)과 같았다. 오시에 홍산의 선동에 있는 처가의 고노(雇奴) 박기동(朴奇童)이 와서 우리 집 문을 두드렸는데 새로 만든 나의 솜옷을 지고 왔다. 그 간에 무고(無故)함을 말하고, 감찰(監察) 선암(船岩) 어른께서 그 사이에 몸이 아팠다가 나았다고 운운하였다. 오후에 갔다. 하루 내내 날씨가 희미하였고 일찍 노을이 가득히 둘러 감쌌다. 하루 내내 눈이 오거나 혹은 밤에 비가 뿌렸으며, 밤에 눈이 많이 내렸다.
29일
일찍부터 산천이 모두 하얗게 눈이 내렸는데, 깊이가 1자(尺)였다. 해가 또 개어 매우 맑았다.
30일
원산에 갔다. 인하여 사곡에 갈 때 눈 때문에 나막신[木屐]을 신었으나 밑이 낮아서 가기가 힘들었다. 사곡에 들어가서 만송을 만나서 『논어』 4권을 전해주고 왔다. 이 날 밤에 ‘제석(除夕)’을 운(韻)으로 노래를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