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2월 박사 신면휴[乙未人日博士申冕休]
말을 호남과 충청 사이에 세우고 경강(鏡江) 상류에서 칼을 갈아서 많은 비적들을 막아 여러 읍들이 조금 안정되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니 하괴성(河魁星)이 상서로운 빛을 띠고 남번(南藩)을 비추고 있습니다. 매일 밤 빈 마당을 걸어 다니면서 손가락으로 점검할 뿐입니다. 편지를 받아보니 삼가 반도 읽지 않았는데, 마음이 상쾌합니다. 하물며 군대의 일도 빨리 처리하신 나머지 잘 지내고 계시고, 참모(參謀) 분들도 또한 한가지로 몸을 보호하여 위로되고 기쁩니다. 실로 애써 바라는 것에 부응할 따름입니다.
저는 병으로 군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누워서 시간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단지 나이만 더하여 부끄러울 뿐입니다. 순무사가 그사이 강화유수로 임명되어 영문(순영문)이 곧바로 철폐되었고, 소모관과 별군관이 여러 읍에서 폐단을 일으켜서 임명장(差帖)과 관련하여 주(州)에 전령하여 모아서 올려 보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목천관(木川官, 현감)은 곧바로 거행하지 않아서 임금에게 아뢰어 파직되기에 이르렀는데, 다행인 것은 죄를 진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미 영이 철폐되어, 첩보할 필요가 없으며, 또 접주를 포살하는 것은 오히려 폐단을 일으키는 범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즉 사람들을 불러 말을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보고된 문서들을 모두 그대로 두고서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에도 금영(錦營)에 머물고 있으며, 유공자를 보고하는 것은 금영에서 행하는 것으로, 그러한 권리는 모두 순사(巡使)에게 있습니다. 이로써 양해하여 주심이 어떻습니까? 청주에서 소란이 또 일어났으나 다만 정확한 보고가 없습니다. 부암(桴菴)은 혹 종종 연락이 됩니까? 만일 가는 편이 있으면,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이때에 소식을 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895년 정월 초2일
박사 신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