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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홍주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두번째[與洪牧書二]

일전에 아뢸 적에 사의(辭義)를 스스로 분명하게 해석하는 데 급급하여 다만 사양한다는 뜻만을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답장을 받아보니 형도 즉시 후회하고 스스로 준엄하게 자책하며 침식을 잊기에 이르렀더군요. 한 마디 농담이 이렇게 심한 결과를 낳았으니 더욱 절실히 부끄럽고 한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고치는 것을 꺼리지 않고 신속하게 하였으니 자신을 책하고 타인을 용서하는 옛 군자의 도리를 깊이 터득하신 것입니다. 이에 저는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약 이러한 경우에 스스로 위로하며 형의 개과천선을 앞서 내가 한 말 탓으로 돌리고 한 마디 말을 더 보태어 형이 개과천선한 성의를 본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형이 나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나는 실로 형을 저버리는 것이며, 형을 저버릴 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람됨을 헤아리지 않고 감히 어리석은 소견을 말씀드리니 형은 더욱 관대한 도량을 베풀어 평온한 마음으로 살피시기 바랍니다.
큰 공업을 이룩하려는 뜻을 가진 자는 그 도량이 틀림없이 넓으며, 중요한 직임을 맡은 자는 그 마음이 반드시 공정합니다. 도량을 크게 하면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그럽고 마음을 공정하게 하면 말을 잘 받아들일 수 있으니, 가볍게 화(怒)를 내지 않고도 천하의 선(善)이 모두 자신의 소유가 됩니다. 화라는 것은 칠정(七情) 가운데 하나이며 사람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화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 도를 손상시킴이 특히 심합니다. 그 글자의 구성을 살펴보면 노(奴)를 따르며 심(心)을 따르니 해친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대순(大舜)은 인륜(人倫)에 지극하신 분인데 맹자는 그가 지극히 우애가 있음을 칭찬하면서 “노여움을 묵혀두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안연(顔淵)은 성인(聖人)에 버금가는 분인데 공자는 그가 학문을 좋아함을 칭찬하면서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현(聖賢)이 경계한 것을 대체로 알 수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각건대, 우리 형은 항상 나라에 보답하려는 정성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홀로 시국을 걱정하는 근심을 안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공업이 이미 쌓이고 명망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서 명성은 높고 책임은 무거우며 지위는 존귀하고 임무는 크니, 형의 한 몸이 짊어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 어떠합니까? 마땅히 더욱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간쟁하는 친구가 혹 멀어져서 자신의 허물을 들을 수 없음을 걱정해야 합니다. 제갈공명은 재주와 지혜가 모두 뛰어났으며 계책을 세움에 미비한 점이 없었으나 항상 말하기를, “국가에 충성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잘못을 부지런히 공격하라. 그러면 적을 섬멸할 수 있고 일도 성공할 수 있어서 공적을 발돋움하고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 촉(蜀)에 있던 여러 현신(賢臣)들 가운데 제갈공명의 10분의 1이라도 미치는 자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말은 이와 같았으니 이것이 어찌 오늘날 우리 형이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형을 살펴보면 도량이 넓지 않은 것은 아니나 공부의 함양이 혹 미진한 점이 있으며, 마음이 공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성찰할 때에 정밀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받아들임에 우선 임시로 인정한다(恕)는 생각이 많으며, 남의 말을 받아들임에 힘써 억지로 따르려는 기색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어찌 사냥을 즐기려는 싹과 기둥을 세는 잘못이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장하겠습니까? 이 서(恕) 자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다가 때때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 조언을 구하여 자신을 도우는 방법은 친구들의 책선(責善)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 중에 자신을 미워하여 비방하는 자가 있을 때 그의 말이 진실되면 그것을 따라서 고치고, 혹 자신을 희화하며 조롱하는 자가 있을 때 그의 말이 훌륭하면 그것을 따라서 선택하면 됩니다. 단지 그의 말이 적합한지 아닌지를 살펴보면 되지 그 사람이 착한지 아닌지는 무엇 때문에 따집니까? 이는 옛 사람이 남의 말을 듣는 방법으로 “다른 산의 돌로 옥을 다듬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형은 노력하기 바랍니다. 아! 나는 비록 어리석으나 친구들 사이를 왕래한 지 이미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정의가 두터워서 친밀하게 교제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는데 지금은 모두 소원해졌습니다. 그 가운데 옛 도(道)를 행한다고 자임하면서 직접적으로 그의 실수를 공격하여도 웃으면서 받아들이고 면전에서 그의 잘못을 지적해도 화내지 않으며 속마음을 털어놓고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사람은 결국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근래에 우리 형을 만났는데 선대 간의 정의가 돈독한데다 다행히 기질도 통하여 두 사람이 서로 진보해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시원하게 잘 통하였고 아득히 간격이 없었으며 어울려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더욱 절차탁마하고 서로 도와주어 함께 불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 후세 사람들이 이씨 성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을 일컬어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혹은 범진(范鎭)과 사마광(司馬光)과 같은 우정을 가졌다고 말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지금 이후로 형이 나를 과도하게 나무라더라도 나는 당연히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니 내가 혹 지나치게 바라는 것이 있더라도 형은 나를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 회옹(晦翁, 朱熹)이 동래(東萊, 呂祖謙)와 이야기할 때 면전에서 그의 가학(家學)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였으나 이 때문에 동래가 화를 내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으며, 서산(西山, 眞德秀)이 정춘(靜春, 劉淸之)과 다투며 논변할 때 언성을 높이고 온갖 말들이 오갔으나 끝내 온화한 기색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두 사람의 마음에 다른 뜻이 없음을 알았으므로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범하게 웃고 즐기는 사이에 무슨 화낼 일이 있겠습니까? 이는 본보기로 삼을 만합니다. 이번에 올리는 『익경(益經)』 한 권은 내가 저술하였으나 지금까지 탈고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을 살펴보면 내가 고심한 흔적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올리는 「경향서(經香書)」 한 통은 내가 1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친구를 사귀는 방법의 요점을 잘 파악하여 사람들이 모두 이전 사람들이 밝히지 못한 부분을 잘 밝혔다고 봅니다. 그러나 형은 무식하니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하! 다만 형이 요즈음 당하는 일들을 생각할 때, 지루한 문장으로 형을 번독스럽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옛날의 도를 강구하여 친구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조금 여유가 있을 때 매번 펼쳐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혹 조금의 도움은 될 것입니다.

주석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춘추시대 제환공(齊桓公)을 모셨던 사람들로,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이 지금까지 전해질 정도로 두 사람의 우애는 유명하다.
범진(范鎭)과 사마광(司馬光) 송(宋) 나라 때 범진(范鎭)과 사마광(司馬光)은 평소에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하여 의논이 한입에서 나온 것처럼 똑같았고, 정의가 친형제 이상으로 두터웠다.
서산(西山, 眞德秀)이 정춘(靜春, 劉淸之) 주희(朱熹), 여조겸(呂祖謙), 진덕수(眞德秀), 유청지(劉淸之)는 모두 남송 대의 성리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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