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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홍주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세 번째[與洪牧書三]

형은 긴 밤의 외로운 등불이요 모진 풍파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한 나라의 선비와 백성들이 나침반처럼 신뢰하고 영광전(靈光殿)처럼 우러러 보아서 천하의 모든 죽백(竹帛)으로도 형의 공덕을 기록할 수 없고 천하의 모든 이정(彝鼎)으로도 형의 충렬을 새길 수 없으니, 한없이 우러러 사모합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고독단신으로 여러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세상에 살면서 한갓 언변으로 승리를 다투니, 마치 조각배 한 척으로 역랑에 맞서고 머리칼 한 올로 천균(千鈞)의 무게를 당기듯이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으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공자가 “나는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깊이 탄식한 말이 있으며, 맹자가 “내가 어찌 논쟁을 좋아하겠는가”라는 어쩔 수 없이 말을 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입을 막아둘 수가 없고 혀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나에 대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그칠 줄을 모르며 의심을 받고 시기를 당하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내가 끝없는 곤경을 겪은 것은 언급할 것이 없으나 근래에 협박을 하고 으름장을 놓아 차마 똑바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비인(匪人)이 와서 말하기를, 예산(禮山)의 사통(私通)이 도착하였으니 이령(李令, 李偰)이 알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홍양(洪陽)이 경계를 엄중히 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어떻게 이령의 소식을 기다리겠는가? 단지 이령만 속인다면 홍양 사람들은 모두 귀머거리인가? 이는 어린아이들의 숨바꼭질놀이와 다를 것이 없다. 대단(大團)의 두령(頭領)의 말은 아마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예산 단(團)은 그 규모가 충청도에서 으뜸이어서 그들이 향하는 곳이면 대적할 자가 없다. 설사 이령이 이 사실을 홍주목사에게 전하여 그가 알게 되더라도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러자 그 사람은 멍하니 있었습니다. 또 한 비괴(匪魁)가 해미(海美)에서 와서 그곳 군대의 위세가 웅장하고 무리들이 많음을 떠벌리며, 자신들을 비방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멀리서도 반드시 듣고 있으며 홍양에 빌붙는 자들은 들리는 즉시 처형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자가 위협을 하자 사람들이 모두 떨었습니다. 이에 내게 묻기를, “공께서 이 마을의 동도(東徒)들이 동학군의 진영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은 일이 있습니까? 해미의 진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물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막을 힘이 있다면 어찌 이 마을 사람들에만 그쳤겠는가? 해미의 진영과 동학이라는 이름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막을 힘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우물에 빠지는 것을 차마 보고서도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서 오직 밤낮으로 탄식만 할 뿐이다. 이렇게 화를 당하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다고 해미 진영의 사람에게 말해주게”라고 하자, 이 사람 역시 멍하니 있었습니다. 나에게 와서 묻는 이 무리들은 겉으로는 나를 아끼는 듯 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나를 염탐하는 것이며, 겉으로는 나를 걱정하는 듯 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나를 위협하는 것으로, 홍양의 동정을 살피려는 자들입니다. 나와 형은 실로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 가까이는 메뚜기를 몰아서 서로 가까이 있도록 할 수 없으며 멀리는 강호를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러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가 없고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미치고 말 것입니다. 원오(元五) 도경(道卿)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7자 결락≫ 일전에 보내주신 답장을 때때로 펼쳐서 음미하는데, 그것이 나를 위로해 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도 합니다. 큰 선물도 받고 깊은 감동도 얻었습니다.
요즈음 부지런히 나라에 충성하시는 몸에 신의 보살핌이 있고 영감의 건강이 좋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새로운 명을 받아 그 책임이 더욱 무거우니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이 또 어떠하십니까? 축하를 드리면서도 한편으로 염려가 되어 안타까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노모께서 어지럼증을 앓아 여러 날 동안 낫지 않으신 데다 반찬도 없이 찬밥을 드시고는 체증에 설사까지 나서 원기가 고갈되어 숨이 넘어갈 듯 한데도 인삼 한 조각이나 고기 반 근도 올릴 방도가 없습니다. 옛 사람 가운데 몸에는 변변한 옷 하나 못 걸치면서도 어버이에게는 온갖 맛있는 음식을 올린 자가 누구입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차라리 나 자신이 불로 지져지고 몽둥이로 짓이겨지는 벌을 받는 것이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겨집니다. 오직 밤낮으로 부축하여 모시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기 어려우니 말(馬)을 빌려주겠다고 한 뜻은 고맙지만 어떻게 출타하여 수인사를 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나를 이해하고 불쌍히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가난한데다 난리까지 만난 것이 바로 오늘날 나의 처지입니다. 한탄한들 어찌하겠습니까? 목적(木賊)을 격파한 것은 광적(廣賊)을 격파한 것보다 더욱 통쾌합니다. 비록 흉괴(凶魁)들이 포위망을 빠져나갔다고는 하지만 하늘의 태양 아래에서 반드시 체포될 것입니다. 이 마을의 비인(匪人)들은 흔쾌히 나를 신뢰하고 있으며 수곡(修谷)의 여러 놈들은 차츰 동학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른바 두령(頭領)인 김병렴(金炳濂)과 김학규(金學奎)란 자를 씹어 먹으려고 하니 더욱 다행입니다. 이 두 놈의 죄는 비록 거괴(巨魁)만큼은 되지 않지만 역시 용서할 수 없으니 체포하여 법으로 바로잡아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결성(結城) 장촌(長村)의 이석민(李錫敏) 씨는 글재주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충의(忠義)를 높이 살 만하며 지혜는 계획을 세우기에 충분하고 재주는 일을 맡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외람됨을 무릅쓰고 여러 차례 천거하였는데 아직까지 사람을 보내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군국(軍國)의 사무가 바빠서 현자를 예우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말이 아첨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겨 믿지 못하는 것입니까? 선비를 구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이지 사사로이 집안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현자를 좋아하고 선비에게 자신을 낮추는 형의 정성으로 도리어 오중윤(烏重胤)에 뒤지려하십니까? 최근의 선비들 가운데 실제로 이석민보다 뛰어난 자가 없으니 빨리 불러서 만나보고 그가 품고 있는 생각을 물어보며 시험해 본다면 어찌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헤아리심이 어떻겠습니까? 관보(官報) 몇 장을 이에 온전하게 돌려보냅니다. 우화(羽化)[김학우(金鶴羽)란 자가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한 가지 일만 사람을 통쾌하게 할 뿐 나머지는 지루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이어서 보지 않는 것만 못하였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주석
오중윤(烏重胤) 오중윤(761년∼826년)의 자는 보군(保君)이고 장액(張掖) 사람이다. 당(唐)의 절도사(節度使)를 지냈다. 그는 겸손하고 예를 갖추어 남을 대하였기 때문에 석홍(石洪), 온조(溫造), 한유(韓愈) 등 당시의 명사들이 모두 그의 막부(幕府)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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