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다섯 번째[與洪牧書 五]
이른바 해미(海美)의 적이 원한도 가장 깊으며 숫자도 가장 많습니다. 이들은 고을의 수령을 살해하고 창곡을 약탈하며 심지어 군성(郡城)을 차지하고 직접 관리들을 임명하여 호서(湖西)의 큰 적이 되었습니다. 만약 이 적들을 쳐부순다면 나머지 무리들은 평정할 것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목시(木)(柿)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이 적들을 토벌하지 않고 전투를 중단하는 것입니까? 이 적들은 성이 견고하고 졸개들은 사나워서 다른 적들과 달라 힘으로 공격하기는 힘들며 계략을 써야 쳐부술 수 있습니다. 승리를 결정지을 계책을 이미 마련해 놓았습니까? 편지로 자세하게 말하기 어려워 혼자 애만 태울 뿐입니다. 무리지어 모여 있는 저 도적들에게 장기적인 계책이 없습니다. 장수는 전술을 알지 못하고 졸개들은 무예를 익히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두령이란 자는 자신이 범한 죄가 틀림없이 사형에 처해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부하 졸개들은 속아서 따라온 자도 있고 협박에 못 이겨 따라온 자도 있습니다. 만약 이간하는 계책을 써서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도록 한다면 무기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평정될 것입니다.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下策)이요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며, 힘으로 싸우는 것은 하책이요 지혜로 싸우는 것이 상책입니다. 제갈공명이 죽을 때까지 남만(南蠻)이 더 이상 배반하지 않았던 것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였던 것입니까?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큰 적이 제거된다면 잔당들은 소탕하지 않더라도 근심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금년 봄에 올린 상소에서 호남(湖南)의 적에 대해, “한편으로 그들을 소탕하여 법으로써 잡아가두면, 분수를 어기고 교화를 따르지 않는 도적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려우면 부하를 의심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한편으로 그들을 타일러 은혜로써 회유하면, 도적을 따라 구차하게 연명하는 백성들이 감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화되면 근본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부하를 의심하는 도적들이 근본을 생각하는 백성들을 지휘한다면 형편상 오래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호남의 번곤(藩梱, 감사)들이 만약 이 방법을 사용하였더라면 어찌 저들이 오늘날처럼 창궐하였겠습니까? 도(道, 동학)와 속(俗)의 명칭은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적(賊)과 민(民)을 구별하는 것이 지금의 급선무입니다. 고명하신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 번 생각한 끝에 적을 소탕하고 위무하는 데 만에 하나는 도움이 될 만한 두 가지 계책이 있어 감히 아래에 적어두니 선택하여 시행하여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첫째, 이번에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단(團)의 두령을 불러 친절하게 대접하고 후한 상을 베풀며 귀순하여 교화를 따른 충성을 칭찬하고 의거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라는 도리로써 깨우치십시오. 그러면 저들이 비록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더라도 ‘네네’ 하면서 물러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 기회에 소와 쌀을 보내어 호궤(犒饋)하고 행동을 같이 하기로 약속하십시오. 다른 단(團)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의심이 생겨나고 점차 원망이 생겨나서 틀림없이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니 훌륭하지 않습니까? 둘째, 광(廣)과 목(木)에서 패한 부대의 졸개로서 각처로 흩어진 자들을 일일이 문책할 수는 없습니다. 그 가운데는 한 동네 사람들이 10여 명 혹은 수십 명이나 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도망쳐온 이후 주문을 외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뉘우치고 두령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원망하며, 자신들이 범한 죄가 용서받을 수 없음을 알고 관군들이 반드시 토벌할 것이라고 두려워하며 봄 꿩이 절로 울어대듯 하루에도 열 번이나 놀라니 이웃 마을이 소란스럽습니다. 이곳은 수곡(修谷)과 가까운 관계로 나는 그곳의 폐단을 잘 알고 있는데 그곳은 안정될 기약이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죄를 저지른 두목만을 처형하고 그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추궁하여 심문하지 마십시오. 더구나 죄 없이 협박을 받은 우리 백성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들이 각자 자신의 생업에 안착하는 것이 태평을 이룩하려는 우리의 뜻과 일치하니, 그 동네에 전령(傳令)을 내려 영리한 관군을 시켜 집집마다 다니면서 회유하도록 하고, 만약 죽은 자와 다친 자가 있으면 별도로 보살펴서 쌀과 약을 주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보이십시오. 백성들의 마음을 결집시키는 데 이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없으니, 이렇게 하면 적괴(賊魁)의 우두머리를 가만히 앉아서 잡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계책이 비록 우활하기는 하지만 옛날 군대를 지휘할 때 이 방법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사람이 시원찮다고 하여 말까지 버리지는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