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목사에게 보내는 편지[與洪牧]
답장의 가르침에 감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풍속이 잘못 되어 가는 것이 동□(東) 때문입니까? 한인(閒人)이 관직을 맡아서 속리(俗吏)로 인해 평생을 망쳤으니 후회로 인한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하하! 서울에서 돌아오신 후의 대감의 사정은 어떠하십니까? 불은 밝게 빛나지 않으면 태워지지 않고 나무는 재목이 되지 않으면 베어지지 않습니다. 형은 이치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양생하는 도리를 아직 터득하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이것을 걱정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나는 부모님 모시고 처자식 거느리고 사는 형편은 예전과 같습니다.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지만 형이 그 사실을 믿지 않으니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성(成)과 서(徐)의 송사는 비록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관계되는 것이 실로 중요합니다. 성(成)이 남의 외로움을 업신여긴 것이 비록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개인 ≪결락≫ 의 일과 서(徐)의 정소(呈訴)에 대하여 고모가 비록 용서를 할 수는 있지만 관청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을 따져볼 때 어느 것이 가볍고 어느 것이 무겁겠습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일의 이치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어찌 감히 고명한 형을 혼미하게 하겠습니까? 편지의 끝에서 말한 내용은 실제로 지나친 나무람이니 지극히 두려워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점이 있으니, 전(錢) 40으로 그 집안이 풍족하다고 하여 그것을 말의 꼬투리로 삼은 점에 대해서는 고명한 형도 그 사정을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번 땅을 구획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힘들게 살피거나 지혜와 힘으로 모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는 집안의 재력이 충분한지 아닌지는 논할 것이 못됩니다. 또 40금(金) 운운한 것은 이미 징수하여 지급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다만 받들겠다고만 말하였습니다. 잘 헤아려서 두 사람에게 모두 죄를 주어 둘의 사건을 해결한다면 서(徐)가 바친 돈은 그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성(成)의 조카 낙운(樂運)은 나에게 글을 배웠으며, 그 햇수가 지금 10년이나 됩니다. 명가의 후손으로 사람됨이 유아(儒雅)하여 내가 매우 아꼈으며 사촌 김낙상(金樂相)[자는 원오(元五)]과 가장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의 숙부가 감옥에 갇힌 뒤로 나의 집에 와서 머물고 있는데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니 나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또 외람되이 간청을 드리니 깊이 헤아려주기 바랍니다. 지아(池兒)의 일은 첩보로 엄하게 알렸으며 선박 1척을 쫒는 것으로 일삼겠습니까? 지아(池兒)의 억울한 영혼이 저승에서 춤을 출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주부자(朱夫子)의 가르침에, “지금 형벌을 가벼이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지 죄를 범한 사람의 안타까운 사정만을 보고 상해를 입은 사람은 고려하지 않으니 매우 염려스럽다”고 하였습니다. 또 “오늘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죄 있는 사람에게 복을 내리면 하늘이 그에게 보답한다는 설에 미혹되어 남의 죄를 용서하여 하늘에 복을 바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죄 없는 사람들의 억울함은 풀어주지 않고 죄 있는 자들이 요행으로 죄를 면하도록 해준다. 이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니 어찌 자신에게 복이 내리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또 “인명이 지극히 소중한데 어찌하여 감히 관아(官衙)가 그를 저자에서 처형하는가?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죽였으니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저 사람의 원한을 풀길이 없다. 곧 피살된 사람을 위하여 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은 특히 이 뜻을 잘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적어 올리니 장공예(張公藝)에게 화목을 권유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매우 부끄럽고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