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덕 36년(1895) 을미 1월 1일에 식솔을 이끌고 숙부댁에 몰래 이르러 근근이 목숨을 보존하며 세월을 보냈다. 도(道)와 연락 통로가 막히고 끊어졌으니 어찌 소문을 들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오히려 주문(呪文)을 암송하며 지극한 정성을 다했다. 이때 동해에 사는 박기정(朴箕丁) 집을 방문하였더니 하늘의 소감(所感)이신지 동지 조석헌이 와서 머물고 있어 서로 간에 화를 면한 말이며 지금 전국의 교도의 상황을 세세히 물어 자세히 알았다.
환난이후 7~8개월 동안 침묵되었던 도인(道人)을 씨에게 다시 설명해서 알리고 위로부터 내려온 경고(敬告)를 살폈다. 동지 문장로, 김병두(金秉斗), 이광우, 곽기풍, 방언필(方彦弼), 문장의(文章義)씨와 서로 단결하여 윗사람을 받들고 아랫사람을 단속하고, 해월 신사의 안후(安候)를 여쭈었다. 연원(淵源) 박희인씨의 통신(通信)은 조석헌씨이고, 해미, 서산, 태안 각포의 통신기관자는 조석훈씨로 정하여 관내 각처의 대소사를 다시 통신하였다.
9월 14일에 조석헌씨가 경고문을 휴대하고 조석훈가를 방문하였는데 이때 조씨가에 가서 장석의 문후를 들은 후에 경고문을 각 포에 전하고 앞으로 도운(道運)의 전진을 재촉하였다. 11월 그믐간에 경고문을 포중에 돌려 보고 한편으로 도리(道理)를 강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