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덕 47년(1906) 병오에 성사께서 도명(道名)을 변경하여 천도교(天道敎)라 칭하고 각지에 교구를 설정하여 교무를 집행하게 하니, 구암(龜庵)의 지시로 예산군에 제42대 교구를 3월 7일에 설치하고 교무를 진행하였다. 해미, 서산, 태안 통로 기관자는 이광우, 이원영, 변봉호, 김용세, 이순화(李順化), 박명환, 곽기풍 제씨였다. 7월 10일에 이광우씨와 동행하여 서산, 태안 각지의 도가(道家)를 순행하여 도리(道理)를 강구하여 수도의 범절(凡節)을 설명하고 귀가하니 가옥이 침수되어 퇴락하고 집과 식량이 없어 호구책이 매우 어려워 하루에 죽 한 그릇을 먹지 못하니 실로 살아 있어도 죽은 것만 못했다. 하지만 가까운 도가(道家)에 왕래하여 교리를 강론하며 혹 주문을 제송(齊誦)하며 성심껏 수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