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 로고

SITEMAP 전체메뉴

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창산후인 조석헌역사 昌山后人 曺錫憲歷史
일러두기

9월 그믐으로 하오 3, 4시 경에 법소(法所)에서 ‘팔도(八路)의 우리 교도가 죄가 없는데도 이 세상에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만일 이것이 그치지 않으면 각 처 두목은 모두 죽을 지경을 당할 것이니 훈시문이 도착하는 즉시 속속 기포하여 각처의 자기 대수포(大首包)에 회립(會立)하여 자생하라’는 훈시문이 도착하였다. 고로 장석문자(丈席文字)를 봉승(奉承)하여 아무개 두목과 상의 후 관내(管內)의 약속을 단정(團定)하였다.

금후 자시(子時)를 위시하여 예산 본포에서 먼저 징소리를 내면 일반 관하(管下)를 일일이 소집(召集)할 사이에 각처에서도 징소리를 전해 듣고, 포포(包包)에서 응성(應聲)하며 각지가 상응(相應)하여 일시에 기포하니 삽시간에 공주, 온양군으로부터 태안, 안흥군에 이르기까지 2백여 리가 일시에 전기(電氣)와 같이 예포(禮包) 전체가 일일이 모두 기포하여 일심상응(一心相應)하였다.

주석
훈시문 본문의 훈시문은 갑오년 9월 18일(양 10월 17일) 최시형이 보은 대도소에서 전동학군에게 기포령을 내린 초유문(招諭文)으로 여겨진다. 당시 내려졌던 초유문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대재(大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자시(資始)하고 지재(至哉)라 곤원(坤元)이여 만물이 자생(資生)이라하니 사람이 그 사이에 만물의 영(靈)이 된지라 부모는 낳고 스승은 가르치고 임금은 기르나니 그 은혜를 갚는 데 있어 생삼사일(生三事一)의 도(道)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찌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선사께서 지나간 경오(庚午)년에 천명(天命)을 받아 도(道)를 창명하여 이미 퇴폐한 강상(綱常)을 밝히고 장차 도탄에 빠진 생령(生靈)을 구하고자 하더니 도리어 위학(僞學)이라는 지목(指目)을 받아 조난순도(遭難殉道)하였으되 아직도 원통함을 씻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31년이라 다행히도 한울이 도(道)를 망(亡)케 하지 아니하여 서로 필법(必法)을 전하여 전국을 통한 교도가 몇 10만인지 알 수 없으되 사은(四恩)을 갚을 생각은 없고 오로지 육적(六賊)의 욕(欲)을 일삼으며 척화(斥和)를 빙자하여 도리어 창궐(猖獗)을 일으키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돌아보건대 이 노물(老物)이 나이가 70에 가까운지라 기식(氣息) 엄엄(奄奄)하되 전발(傳鉢)의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이 옷깃에 차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도다. 이에 또 통문(通文)을 발(發)하노니 바라건대 여러분은 이 노부의 마음을 양찰(諒察)하고 기필코 회집(會集)하여 비성(菲誠)을 다하여 천위주광(天威紸纊)의 아래 크게 부르짖어 선사(先師)의 숙원(宿寃)을 쾌히 펴고 종국(宗國)의 급난(急難)에 동부(同赴)할 것을 천만(千萬) 바라노라.” 『천도교백년약사 (上)』(p.250)에서 재인용.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