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1902) 1월 23일에 천안군 남면 대거리 초당부인(草堂夫人) 배운포(裵雲圃)씨가 본인에게 대하여 교중(敎中)의 일에 연조금(捐助金) 1천 냥을 내어 주시기에 감사히 생각하고 받아가지고 작년 6월 15일 목천 유원춘(柳元春)씨의 집에 득용문조(得用文條)로 425냥을 25일 우선 보급하고, 전문 150냥은 경성 사무소(事務所) 한영필씨에게 올려보내고, 150냥은 한영필씨 아산 시궁골 집으로 내어주고, 60냥은 2월 4일에 강원도 상암장댁에 드리고, 40냥은 왼골 박응규에게로 내어주고, 전문 50냥은 4월 8일에 박응규가 강원도로 거처를 옮길 때 내어주고, 50냥은 말미 이낙여가 종계전 상암이 쓴 조로 보급하고, 60냥은 2월 27일 상암장 소실이 거처를 옮겨 강원도로 갈 때 내어주고, 15냥은 각처에 왕래하는 비용으로 썼다.
임인년 6월 9일에 셋째 딸 열승(烈承)이 탄생하였다. 11월 17일에 유원춘의 전조(錢條)를 유기일씨와 갈임할 때에 찾아다 달라는 돈 500냥은 빌린 돈으로 회계한 고로 본인이 소유한 유목골 밭 12두락과 오서리 일편산(一便山) 30동(同) 10문(文)을 합하여 가문(價文) 150냥을 나누어 분급하니 남은 것이 300냥이라 부득이하야 시변(市邊)해서 300냥을 얻어와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