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1903) 3월 25일에 이르도록 시변한 돈을 갚지 못한 고로 곽기풍씨에게 말하여 김봉현씨에게 전문 100냥과 이승경씨에게 100냥과 합 200냥을 얻어오고 본인의 가사(家舍)까지 전집하여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
상암장께서 신축 10월 초에 강원도 홍천 불막 삼연터에 새로 집터를 정하니 3칸집 4냥에 방문 2개에 2냥을 합하여 모두 6냥을 주고 입택한 후 임인년에 산소를 마련한 바 유기성(柳基星)씨 부자, 최학도(崔鶴道)씨 부자(父子), 김일택(金一澤)씨, 고창억(高昌億) 등 모두 여섯 사람이 함께 살며 지냈다. 그 때에도 수배중이라 박상암장께서 성(姓)을 강릉 김씨로 거짓 처변하셨다. 그곳에 오고 가기를 본인과 권감찰이 하였는데 한영씨로도 여러 차례 통신케 조처하였다. 그 때에 상암장께서 〈만물지중 최령가〉와 〈일세만민 안빈가〉를 지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