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아니다. 일본과 조선이 개국 이후로 비록 이웃나라이기는 하지만 누대로 적국이었다. 그런데 임금의 인후(仁厚)하심에 힘입어 세 항구를 개항하여 통상을 허락하였다. 이후 갑신년(1884년) 10월에 4명의 흉적이 적의 위세를 등에 업음에 따라 임금의 안위가 조석에 달려 있었으나, 종묘사직이 부흥하여 간당(奸黨)을 소멸하였다. 금년(1894년) 10월에 간악한 개화당(開化黨)이 왜국(倭國)과 결탁하여 밤을 틈타 서울로 들어와서, 임금을 핍박하고 국권(國權)을 제멋대로 농단하였다. 더구나 방백(方伯)과 수령이 모두 개화당 소속으로 백성을 보살피지 않고 즐겁게 살륙(殺戮)을 자행하며 생령을 도탄에 빠뜨렸다. 이에 우리 동도(東徒)가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소멸하고 개화당을 제압하며 조정을 태평하게 하고 사직을 보전하고자 한다.
그런데 의병이 이르는 곳마다 관군과 군교(軍校)가 의리(義理)를 생각하지 않고 나와서 접전을 하여 승패(勝敗)는 나지 않고 인명만 상하니 어찌 불쌍하지 않겠는가? 사실 조선 사람끼리 서로 싸우자는 것이 아닌데, 이처럼 골육상전(骨肉相戰)을 벌이니 어찌 애달프지 않겠는가? 또 공주(公州)와 한밭[대전]의 일로 논하더라도, 이것이 비록 원수를 갚은 것이라고는 하나 일이 참혹하고 후회막급이다. 방금 대군[일본군]이 서울로 들이닥쳐 사방이 흉흉한데 편벽되게 서로 싸우기만 한다면 이는 골육상전이라 할 만하다. 한편 생각건대, 조선 사람끼리는 도(道)는 다르지만 왜를 배척하고 중국을 배척하는 의리는 마찬가지이다.
이에 두어 자 글로 의혹을 풀어 알게 하노니, 각자 자신을 돌아보아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면 귀의(歸義)하여 서로 의논하여 함께 왜와 중국을 배척하여 조선이 왜국이 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합하여 큰 일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갑오년 11월 12일
동도창의소(東徒倡義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