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靈光) 의병장(義兵將) 이현숙(李賢淑)은 동적(東賊)의 거괴(巨魁)이다. 이현숙의 가동(家童) 김연순(金年淳)의 공초(供招) 내용에, 이현숙은 송문수(宋文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각 진(鎭)과 읍(邑)의 무기를 탈취하기 위하여 튼튼한 배 4척에 올라타고 홍농(弘農) 목맥진(木麥津) 가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3척의 선박은 먼저 출발하고 이현숙이 탄 1척은 뒤처져서 칠산(七山) 앞 바다에 배를 띄웠는데 평양(平壤)으로 가는 배를 만나 비금도(飛禽島)에 정박시키고 그 배에 실려 있던 쌀 2석과 총 1자루를 탈취하였다. 또 무장(茂長)의 동적(東賊) 18명을 만나 함께 그 섬의 박예중(朴禮中)의 집에 들어갔다. 주인노인의 수의(壽衣)로 쓸 명주(明紬)와 북포(北布) 등의 물건을 무장의 동적이 탈취하자 이현숙이 도로 찾아주었다. 주인이 은혜를 많이 입어 마포(麻布) 2필을 이현숙에게 수고한 대가로 내어주었다. 한편 이현숙은 무장의 동적에게 200냥을 탈취하였다. 도초도(道草島)로 들어가서 고형겸(高亨兼)의 돈 300냥과 섬사람들의 돈 100냥을 탈취하였다. 다시 하의도(荷衣島)로 들어갔는데 어떤 여인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그 섬에서 갓을 만드는 장인의 아내였으며 그녀의 남편은 출타하고 없었다. 이현숙은 그녀를 설득하여, “내 처남이 홀아비로 살고 있는데 당신이 그와 함께 살면 좋겠다”라고 말하고는 배에 싣고 왔으며, 또 하의도의 돈 200냥을 탈취하였다.
안창도(安昌島)에 들어가서 법성(法聖)의 동적(東賊)을 만나 ‘기좌진(起坐津)가에 쌀 48석과 벼 40석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현숙은 즉시 그 나루로 가서 그 쌀과 벼를 모두 탈취하였다. 무안(務安)의 배 접주(裵接主)라는 놈이 이 이야기를 듣고 이현숙을 잡아다가 섬사람들을 못살게 하였다는 죄목으로 문책하였더니, 이현숙은 “이것은 전적으로 내가 주관한 것이 아니라 법성의 동적이 지시하였기 때문에 탈취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배 접주는 “이 쌀과 벼는 네가 가져갈 필요가 없으니 모두 내 배로 옮겨 실으라”고 하였다. 이현숙은 “쌀과 벼는 아깝지 않습니다. 특별히 남은 목숨을 살려주시기를 간청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화해를 하고 쌀 13석과 벼 20석을 내어주었다. 이현숙은 이것을 싣고 홍농(弘農) 가마포(加馬浦)로 왔다. 그런데 이현숙은 “이는 전적으로 송문수(宋文洙)의 지시를 따른 것이므로 혼자서 이익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고는 쌀 12석과 벼 13석을 송문수의 접솔(接率)에게 내어주었으며, 싣고 온 돈 가운데서 이현숙의 접솔에게 각각 5~6냥씩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이현숙이 모두 가졌다. 4척의 배가 비록 함께 출발하였으나 이현숙의 배는 뒤처졌으며 먼저 출발한 3척의 배는 진도(珍島)의 수영(水營) 등지에 들어가서 무기를 탈취하여 모두 송문수에게 주었다. 그런데 이현숙은 단지 총 13자루만을 가지고 있다가 무안의 동적에게 빼앗겼다.
근래에 왕사(王師)가 고창(高敞) 등지에 도착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사창시(社倉市)에 주둔하고 있던 송문수의 접솔들은 갑자기 겁을 먹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런데 송문수와 이현숙은 서로의 행선지를 알지 못하다가 갑자기 홍농 땅에서 만났다. 이현숙은 송문수를 책망하면서, “너는 네가 살기 위하여 나를 버리고 왔으니 일이 매우 잘못 되었다”라고 하고는 총을 쏘아 죽였다. 그리고 그 시신을 영광 고을 사정(射亭)으로 압송하여 와서 백정에게 그 머리를 자르도록 하여 관아에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