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一. 광주 소지면(所旨面) 김경호(金景浩)가 아룁니다. 나주의 오경수(吳景洙) 등이 사패(賜牌)를 가탁하여 저의 선산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저의 사촌은 구타당하여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동학(東學)을 빙자하여 관아의 옥에 갇힌 죄수를 빼내어 갔으며 또 저에게 옥비(獄費)를 거두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제(題):동학을 빙자하여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자들은 그 죄가 죽어 마땅하다. 하물며 전후의 사리가 억울한 자이겠는가? 오(吳)가의 소행은 매우 놀랍다. 상세하게 조사하여 법에 따라 조처하도록 하라. 쌍재관(隻在官)에게
一. 장성 읍동(邑東) 월평(月坪)의 문 초계(文草溪)댁의 노(奴) 춘광(春光)이 아룁니다. 저희 집은 명례궁(明禮宮)의 전답을 주간하기 때문에 수세조(收稅租) 32석을 마름[舍音]의 집에 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병정들이 동학(東學)의 곡물로 오인하여 본 고을로 가져갔습니다.
제(題):이미 궁(宮)의 마름으로부터 구별한 바가 있으므로 지금 이를 빙자하여 말을 할 수는 없다.
一. 흥덕(興德) 사보(沙浦)의 송관수(宋觀洙)가 아룁니다. 시생의 생가(生家)의 제수 유씨(柳氏)는 그 지아비가 죽었을 때 손가락을 깨물고 허벅지의 살을 베어 내었으며, 늙은 시아버지를 봉양하는 데 며느리의 도리를 극진히 하였습니다. 불행히도 작년 여름에 부안(扶安) 연곡(連谷)의 동학 박성윤(朴成允)과 성현(成玄) 형제에게 욕을 당하였다가 잠시 후에 깨어나서 손가락을 깨물어 원통한 사정을 적은 글 한 장과 ‘지원극통[至冤極痛, 지극히 원통하다]’의 4글자를 쓰고는 그대로 자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원통함을 풀지도 못하고 정려(旌閭)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題):유씨의 옥과 눈처럼 깨끗한 절조와 송죽(松竹)과 같이 곧은 정절은 한 번 보기만 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마음에 느끼는 바가 생겨난다. 천리(天理)는 크고 밝으니 박가 놈이 어찌 법망을 빠져나가겠는가? 당연히 체포하여 보복할 날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극히 패악한 놈은 평범하게 놓아주어서는 안되고 특별히 단속하여 잡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유씨의 절조는 즉시 감영에 보고하여 칭찬하고 장려하도록 할 것이다.
一. 공주 이 진사 댁의 노(奴) 삼돌(三乭)이가 아룁니다. 저의 상전이 작년 7월에 나주(羅州) 땅에 갔다가 무안(務安)의 동학 배(裵)가에게 빼앗긴 물건을 아래의 기록에 따라 되찾아 주십시오.
제(題):비류(匪類)들이 약탈한 물건은 비록 찾기 어렵더라도 확실히 결말을 지어 처분을 내리는 것이 징계하여 그치게 하는 방도이다. 엄중하게 조사하여 일일이 되찾도록 하고, 만약 삼오(三吳)가 다른 죄를 범하였으면 법률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