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 로고

SITEMAP 전체메뉴

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부록 [附錄]

북삼면(성곡면·유동면·제고곡면) 사림이 향교에 보낸 글 [北三面渻谷面流洞面諸古谷面 士林通鄕校文]

삼가 생각건대 도(道)를 지키고 사(邪)를 배척한 것은 사문(斯文), 유학의 다행이며, 백성들을 위하여 해악을 제거한 것은 생령들의 복이다. 어찌하여 세상의 수준이 날이 갈수록 낮아져 사설(邪說)이 제멋대로 행해져서 동학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세상에서 변란이 크게 일어나서 인도(人道)가 거의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저들의 도는 양주(楊朱)도 아니고 묵적(墨翟)도 아니면서 그 폐단은 홍수나 맹수보다 심하며, 저들의 학(學)은 선(仙)이라고 하고 불(佛)이라고 하나 도리어 팽조(彭祖)와 석씨(釋氏)에게 죄를 얻었다.
한쪽에서 부르면 다른 쪽에서 화답하여 곧 이단의 말이[異言]이 횡행하게 되었으며, 뱀처럼 서리고 지렁이처럼 엉켜서 추악한 무리들의 소굴이 되었다. 이는 세상의 운수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렇게 되자 온갖 변괴가 나타나서, 70주(州) 백성들의 생업이 매우 곤궁해지고 500년 전통의 옛 풍속에 부끄러움이 생기게 되었다. 오직 이 양양(襄陽) 한 지역만은 충효를 서로 권면하여 열성조의 지극한 은택이 마르지 않았으며, 시례(詩禮)를 전해서 선현들의 유풍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근래에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도가 쇠퇴하여 주자(朱子)와 육구연(陸九淵)의 진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제(齊)와 노(魯)의 풍속이 일변하여 서로 틈이 생겨 다투게 되었는가? 삼물(三物)이 일어나지 않아 학교에서 현송(絃誦)이 거의 끊어졌으며, 사유(四維)가 베풀어지지 않아 마을에서는 날마다 염치가 사라져갔다.
무장한 무리들이 늘어나서 다시 녹림(綠林)에서 모이고 그들이 세력을 떨치면서 황지(潢池)에서 뭉치고 있다. 장각(張角)의 허망한 주술(呪術)은 한(漢)을 어지럽히는 실마리가 되었으며, 곽경(郭景)의 요사스런 둔갑술은 송(宋)의 번영을 사라지게 하였다. 그래서 입을 막고 혀를 닫아버리면 아무도 그 학(學)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며, 머리를 움츠리고 몸을 감추게 하면 세상에서는 저들의 봉기에 가담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겠다.
기둥과 서까래는 불타서 거의 같은 처지였으나 서로 따뜻이 위로하였고, 비바람이 불어 밤같이 어두웠으나 오래도록 닭울음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이러한 때에 임금께서 윤음을 내리셨는데 이는 ‘사설(邪說)을 배척하라’는 정조 임금(正廟朝)의 유교(遺敎)를 따른 것으로 어진 임금의 적절한 조치였다. 이에 포정사(布政司), 감영의 개칭의 감결의 관지(關旨)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사인 김신근·박승덕에게 맹약을 맺는 것을 주장하게 하니 북소리가 우레처럼 울려 퍼지고, 집강 장문건·황송해에게 적을 성토하게 하니 깃발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검독(檢督) 황돈일·김시규은 귀신처럼 방책을 결정하였고, 수리(首吏) 정대일·장재정이 적절하게 도우니, 우리 백성들과 병사들 중 어떤 사람인들 일제히 용맹을 떨치지 않을 수 있는가?
동서남북 사방의 땅은 모두 삼한의 영토가 아님이 없다. 북을 3번 울려서 곤륜(崑崙)의 성채를 빼앗으니 농지고(儂智高)는 달아났다. 소 10마리로 북문(北門)의 군사들을 먹인 상인 현고(弦高)는 참으로 가상하다. 마을을 불살라, 비록 성안 사람들이 무관하게 재앙을 받았지만, 방책을 두루 모아서 산택(山澤)에서 호랑이 잡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괴수를 죽이고 위협에 못 이겨 따라간 자들은 용서함에 이르러서는 누가 안 된다고 하겠는가?
선왕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을 본받아 창생(蒼生), 백성을 구제하며 적자(赤子), 백성를 보호하고, 한 지역의 요사스런 기운을 일소하여 환하게 푸른 하늘과 밝은 해를 보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누구의 힘인가? 집강과 검독은 재지가 뛰어나고 일찍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충의(忠義)의 마음이 분발하여 날아오는 화살과 돌을 피하지 않았다. 비류들은 목을 바치고 넋을 빼앗겼다.
마을과 시장은 예전처럼 되었으며 백성들은 안도하고 생업에 복귀하였다. 임장군(林將軍)과 같은 충성과 용기가 어찌 과거에만 있었으랴. 황창원(黃昌原)이 받은 상을 오늘날에 받는 것도 과분하지는 않다. 규정에 따른 은상(恩賞)은 후일 묘당에서 조치가 있을 것이다. 위무(威武)를 발휘한 것은 참으로 한 고을 사림의 여론과 합치하였다. 사악한 무리를 막는 자들이 바로 성인의 편이다. 사도(斯道)가 일신된 것은 실로 우리들의 영광이다. 이에 전말을 적어 좌우에 알리니 여러 군자들은 모두 향교에 모여 원근에 통문을 발송하여 타인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도록 하자.
진사 황조하(黃肇夏)·권경하(權絅夏)·박주봉(朴周奉)·이익상(李翼相), 유학 권성달(權聲達)·김필락(金弼洛)·박희녕(朴熹寧)·신수楹(申壽楹)·변규홍(邊奎弘)·이종하(李種夏)·정대룡(丁大龍)·김응락(金應洛)·이면진(李冕鎭)·권석환(權錫煥)·권석범(權錫範), 제통(製通) 최병태(崔炳泰), 사통(寫通) 권상대(權相大)·김후(金)

주석
양양(襄陽) 예천의 옛 이름이다.
육구연(陸九淵) 중국 명나라시기 최초로 주자설의 반대 학설을 제창한 성리학자로 육상산이라고도 한다.
삼물(三物) 백성을 가르치는 세 가지 일이며, 곧 육덕(六德)・육행(六行)・육예(六藝)를 이른다.
현송(絃誦) 거문고를 타면서 시를 읊는다는 말로,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교양을 쌓음을 비유적으로 이른 것이다.
사설(邪說) 조선후기 정조는 윤지중 신주사건때 최초로 천주교를 배척하는 위정척사를 공포하였다.
농지고(儂智高) 송나라 남만(南蠻) 사람으로 나라를 세워 남대국(南大國)이라 하였으나 곧 멸망되었다.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