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사실 제일[召募事實 第一]
1894년[甲午]
10월[十月]
16일. 상주목에 도착한 감영의 감결[甲午十月十六日尙州牧到付監營甘結]
지금 도착한 의정부(議政府) 관문(關文)에,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양호(兩湖)의 비류(匪類)들을 지금 순무영(廵撫營)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토벌하니 멀고 가까운 지역의 선비와 백성들 가운데 틀림없이 소문을 듣고 의병을 일으키는 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나주목사(羅州牧使) 민종렬(閔種烈)과 여산부사(礪山府使) 유제관(柳濟寬)을 호남소모사(湖南召募使)로 더 차하(差下)하고, 홍주목사(洪州牧使) 조재관(趙載觀)과 진잠현감(鎭岑縣監) 이세경(李世卿)을 호서소모사(湖西召募使)로 차하하여, 그들로 하여금 의병을 모집하여 하루속히 소탕하도록 하고, 영남(嶺南)에는 창원부사(昌原府使) 이종서(李鍾緖)와 전 승지(前 承旨) 정의묵(鄭宜默)을 역시 소모사로 차하하여 함께 방어하도록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이번에 이를 윤허한다고 전교(傳敎)하셨다. 전교의 내용대로 받들어 시행하라. 창원부(昌原府)에 관문으로 신칙하고 전 승지 정의묵의 집은 상주(尙州)에 있으니 속히 통지하여, 힘을 합하여 서로 도와 비류들을 소탕하고 이후의 상황을 계속 신속하게 보고하라”고 하였다.
소모사 전 승지 정의묵은 집이 본 고을에 있으니 감결(甘結)이 도착하는 즉시 본가에 통지하여 신속히 거행하도록 하라. 창원부사는 아직 부임하지 않았으므로 협력하고 돕는 방도는 그가 부임하기를 기다렸다가 서로 의논한 뒤에 조치하라고 통지하라. 감결이 도착한 일시와 통지한 상황을 속히 보고하라.
10월 12일 진시(辰時, 오전7시~9시) 감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