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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소모사실(상주) 召募事實(尙州)
  • 기사명
    1894년 10월 21일 여러 고을과 상주 각 면리의 대민(大民)과 소민(小民)들에게 방문으로 효유함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4년 10월 21일
일러두기

21일. 여러 고을과 상주 각 면리의 대민(大民)과 소민(小民)들에게 방문으로 효유함[同月二十一日榜諭列邑及尙州各面里大小民人等處]

경상도소모사가 각 고을의 유생과 서리 및 백성들에게 두루 효유한다. 위대하신 우리 열성조께서 대를 이어가며 인자함과 은택을 두터이 하시어 선비들의 추구하는 바가 반듯해지고 백성들의 풍속이 순수해졌다. 그리하여 천한 종이나 어리석은 부부라도 정의를 두려워하고 법을 받들며, 윗사람에게 친근하고 어른을 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500여 년을 이어오면서 백성들은 전쟁을 알지 못하였고 나라는 그 덕택을 오래도록 보았다. 그리고 특히 대령(大嶺, 조령) 이남은 추로지향(鄒魯之鄕, 맹자 공자의 고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도(道) 내에서 골고루 훌륭한 인재들을 배출하여 국가의 근본이 되었으니 거기에는 진실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지금 국운이 험난하고 사설(邪說)이 횡행하여 일종의 요괴 무리들이 동학이라고 일컬으면서 비결(秘訣)과 주문(呪文)으로 속이며 도참(圖讖)의 설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여서 유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 그 법을 전파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 무리들이 불어나서 세력이 커지자 도처에서 추종자를 불러 모아 천 명 혹은 만 명씩 무리를 이루어 우리의 성읍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무기와 군량을 빼앗아갔으며, 우리의 사족(士族)을 때리고 우리의 백성들을 흩어지게 하였다. 그밖에 분수와 법률을 어기며 윤상(倫常)을 어지럽히는 등 못하는 짓이 없었다. 팔도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 거의 조용한 지역이 없었으나 호남과 호서가 가장 심하였다. 관부가 정사를 집행할 수 없고 조정이 명령을 시행할 수 없으며, 백성들은 편안히 생업에 종사할 수 없고, 국가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참으로 유사 이래 처음 발생한 큰 변란이었다.
우리 성상께서 밤낮으로 근심하시면서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편안하게 여기시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윤음을 반포하여 특별히 효유하시었으나 저들은 완악하게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며, 군대를 동원하여 위무(威武)를 드러내었으나 저들은 완고하게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저들이 포효하면서 날뛰는 것은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전에 의정부에서 임금의 뜻을 받들어 순무영(巡撫營)에 신칙하여 병사들을 징발하여 비류들을 토벌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의병들을 모집하여 하루속히 적을 소탕하라는 뜻으로 3도에 각각 소모사를 파견하였다. 나는 재주가 없고 능력이 부족하여 경상우도(慶尙右道)라는 중요한 지역을 맡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나 임금이 근심하는 것은 신하에게 치욕이 되니 어찌 분골쇄신하는 것을 꺼리겠는가? 다만 이번 변란이 불행히도 선산(先山)이 있는 고향 가까이에서 발생하였다. 대의(大義)는 양심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이니 개인적인 사정만 고려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출행하여 장차 병사를 소집하고 군량미를 모아서 저들의 뿌리를 제거하려고 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적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추종자들을 풀어주는 것이 삼대(三代, 중국 고대의 하・은・주) 성왕(聖王)의 군율임이 떠올랐다. 더구나 우리 성상과 대원위(大院位, 흥선대원군의 존호) 합하(閤下)께서는 천지와 같이 넓고 인자한 마음으로 비와 이슬과 같은 은택을 내리시어 저들을 위로하고 정착시키면서 언성을 높이지 않고 얼굴빛을 바꾸지 않기를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가 교만한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하시다가 부득이한 경우에야 마침내 사사로운 정을 끊는 조치를 내리셨다. 그러므로 내가 감히 이러한 성덕(聖德)을 받들어 대양(對揚)하지 않고 곧장 무력을 동원할 수 있겠는가? 이에 업무를 시작하는 날에 우선 마음속의 생각을 드러내어 효유하고 아래에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조목별로 기록한다. 우리의 대민(大民)과 소민(小民)들은 이를 잘 살펴서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그리고 경내의 비류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이 확실히 잘못을 깨닫고 단호히 귀화하여 살아서는 선량한 백성이 되고 죽어서는 정의로운 귀신이 되도록 한다면 어찌 큰 다행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만약 주저하고 머뭇거리면서 겉으로는 귀화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들은 난민(亂民)임을 자처하고 국가에 대항하는 자이므로 당연히 충(忠)과 신(信)을 갑옷과 투구로 삼고 예(禮)와 의(義)를 방패로 삼으며 민심(民心)을 성곽으로 삼아 철저하게 소탕한 뒤에야 그만둘 것이니 후회가 없도록 하라. 할 말이 아직 남아 있으니 속유(續諭)를 기다리도록 하라. 같은 날 상주(尙州)에서. 이때에 방문(榜文)과 아래 기록한 절목(節目)을, 도착하는 지역의 각 고을과 각 면리(面里)에서 진서(眞書, 한문)와 언문(諺文, 한글)으로 번역하여 베껴서 마을에 게시하여 한 사람이라도 보지 못하여 알지 못하는 폐단 없도록 하고, 시행 상황을 밤을 새워 신속하게 보고하도록 하였다.
一. 소모사의 임무는 오로지 의병을 모집하여 비류들을 소탕하는 데 있으니, 경내의 대민(大民)과 소민(小民)들 중에 비류(匪類)에 들어가지 않은 자들은 모두 양민이므로 의병이 되어야 한다. 5가(家)를 1통(統)으로 만들고 5인을 1오(伍)로 편제하여, 그 가운데 용맹하고 위풍이 있는 자를 골라서 정의영관(正義領官)과 정의무사(正義武士)로 차출하고 관인을 찍은 문서를 지급하여 인솔하는 표식으로 삼을 것이다.
一. 양민들이 비류에 가담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는 화가 두려워서 들어간 자도 있고, 재산이 아까워서 들어간 자도 있고, 남의 꾐에 빠져서 들어간 자도 있으며, 남의 위협 때문에 들어간 자도 있다. 이들 모두는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사정을 따져보면 혹 용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각자 비류에 가담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명첩(名帖)과 염주(念珠) 등의 물건을 가지고 본 군문(軍門)으로 와서 정의의 대오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지난 일을 허물하지 않을 것이다.
一. 비류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바로 접주(接主)들이 난을 피할 수 있다거나, 군역을 면제해 준다거나, 병을 치료해 준다거나, 내세에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등의 말로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사람을 속이는 술책이고 사람을 죽이는 계책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미혹되어 알지 못하였다가 지금 깨달았다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이미 자신들이 처신해야 할 바를 알고 단호하게 귀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혹 여전히 미련이 남아 주저하며 돌아오지 않는 자들은 진짜 비류들이다. 이들은 당연히 결단코 끝까지 추적하여 붙잡아 그 머리를 효수하고 그의 집을 불태우고 그의 전택(田宅)과 재산을 몰수하고 그의 이웃과 친척들을 연좌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一. 귀화한 비류들은 자신들이 접주(接主)에게 속았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 중에서 접주의 은닉처를 밀고하거나 혹은 직접 그들을 잡아서 바친다면, 이는 진심으로 자신들의 허물을 보상하는 행동이니 더욱 가상하다.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별도로 상을 내릴 것이다.
一. 거괴를 잡아서 바치는 자에게는 그에 따라 후한 상을 내리라고 조정에서 여러 차례 명령을 내렸다. 누구를 막론하고 만약 분연히 힘을 발휘하여 백성들을 위하여 해악을 제거하는 자는 당연히 임금께 아뢰어 상을 내릴 것임을 약속한다.
一. 어리석은 백성들로서 비류에 들어간 자들도 이미 통탄할 노릇인데 사족(士族)이나 관속(官屬)들이 종종 잘못된 것에 물들었다는 소문이 들리니 매우 놀랍다. 아! 문학(文學)과 예법(禮法)을 강구하는 가문에서 성장하여 벼슬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차마 이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차마 이럴 수가 있는가? 지금 만약 법으로써 처벌을 한다면 어리석은 백성들보다 훨씬 더 엄중하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혹 어리석고 완악한 백성들보다 빨리 잘못을 뉘우칠 수 있으니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마음을 고치도록 하라. 그러면 재주와 능력이 있는 자들은 지난 잘못을 허물하지 않고 본 군문에서 재능에 따라 임무를 맡길 것이다.
一. 비류들이 귀화하기 전에는 저들을 소탕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귀화한 뒤에는 방어하는 것이 긴요한 일이다. 이는 조정에서 지시한 사항이다. 경내의 대민(大民)과 소민(小民)들은 힘과 마음을 합하여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고, 한결같이 본 군문의 통제에 따라 소홀히 하거나 다른 생각을 품지 않도록 하라.
一. 전에 본 고을에서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무기를 잃어버린 것이 10에 7~8이었다. 그런데 전해들은 바로는 창검과 총 등이 더러 그 당시 면(面)을 떠났던 비류들의 집에 있으나 그들은 처벌이 무서워서 감히 반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치상 그럴 법도 하다. 진심으로 귀화하려고 한다면 무기를 반납하는 것은 더욱 훌륭한 일이니 절대로 처벌을 걱정하지 말라. 그러나 만약 감추어 두었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중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一. 본 군문이나 각 고을, 진영(鎭營)의 관속(官屬)을 막론하고 외부의 마을로 몰래 나가서 귀화한 백성들에게 토색(討索)질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죄는 비류들의 악행보다 더 크다. 당해 면(面)과 동(洞)에서 즉시 붙잡아서 압송하여 군율로 다스리도록 하라.

주석
대양(對揚)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널리 백성들에게 알린다는 뜻이다.
5인을 1오(伍)로 다섯 집을 단위로 한 오가작통을 하고 그 속에서 5명의 장정을 골라 향병으로 편성하였는데 항오(行伍)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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