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사(觀察使) 겸 도순찰사(都廵察使)・친군남영사(親軍南營使)가 공문으로 회답하는 일이다. 귀 소모영(召募營)의 이문(移文)이 지금 도착하였다. 목인(木印)을 사용하는 일은 직접 의정부에 보고하고 그 제사(題辭, 결정의 지시)를 기다렸다가 시행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감영의 아전 1인은 차출하여 보냈으므로 상고하여 시행하라. 갑오년 10월 24일
친군남영사(親軍南營使)
경상감사는 지방 군사지휘권을 가진 관찰사, 농민전쟁 당시 임시직인 도순찰사, 1887년 군사기구를 친군영으로 개편한 뒤 대구에 둔 남영의 책임자인 남영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각지 소모사는 행적으로는 경상감영과 의정부, 군사적으로는 남영과 순무영의 지휘를 받아야 했다. 주변 고을 수령과 장위영 선봉진과는 협조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