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문규획(軍門規劃)
一. 지금 이 비적(匪賊)들은 원래 제압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태평한 세월이 계속되어 군정(軍政)이 소홀해지고 인심이 흩어져서 제압하기 어려워진 것이며, 여러 진(鎭)들이 무너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니, 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을 하루라도 늦출 수 없다.
一. 적을 위협하는 방법은 소문을 먼저 퍼뜨리고 뒤에 실행에 옮기는 것이 제일이며, 영토를 지키는 일도 가운데에 버티고 있으면서 밖을 방어하는 데 달려 있다. 군사들을 양성하려고 한다면 먼저 포군(砲軍)을 설치하여 상비병으로 삼아, 일이 없을 때에는 매일 훈련을 시키고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적의 숫자를 헤아려서 그곳에서 방어한다.
一. 병사는 정예(精銳)가 중요한 것이지 많은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본 고을의 포군은 그 숫자가 겨우 100명에 불과하여 평시에도 충분하지 않은데 하물며 위태롭고 어지러운 때이겠는가? 이에 여론을 참작하고 절충하여 본래의 포군 100명 외에 200명을 더 설치한다.
一. 장정은 반드시 튼튼하고, 용감하고, 힘이 세고, 담력이 있고, 잘 달리는 자로 충당한다. 고을과 외촌(外村)을 가리지 말고 항심(恒心)이 있는 토착민을 선발하여 그들 각자가 본업에 충실하며 가벼이 옮겨가지 않도록 한다.
一. 병제(兵制)의 대오편성은 10인을 1대(隊)로 하고, 100인을 1초(哨)로 하여, 10인에는 대장(隊長) 1인을 두고, 100인에는 초장(哨長) 1인을 둔다. 이들은 속리(屬吏)와 군교(軍校) 가운데 청렴하고 신중하며 일을 잘 아는 자나, 혹은 외촌(外村)의 평민 가운데 무용과 위풍이 있어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복종하는 자로 삼고, 늠료(廩料, 봉급)를 좀 더 지급한다. 만약 한 대(隊)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대장(隊長)에게 책임을 묻고 한 초(哨)의 일은 초장(哨長)에게 책임을 물으며, 근무성적을 평가하여 상벌을 분명히 한다.
一. 병사를 양성하는 요체는 병사의 숫자를 줄이고 군량은 늘이는 데 있다. 병사들이 모여 있는데 군량이 없으면 스스로 궤멸하게 된다. 월료(月料, 월급)는 1정(丁) 당 백미(白米) 15되[升]와 동전(銅錢) 500문(文)을 지급하여, 농사일을 대신하여 식구들을 부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직 훈련에만 집중하도록 한다.
一. 3인의 집강(執綱)은 영관(領官)으로 개칭함. 백미 20되와 동전 700문을 지급하고, 초장과 집사(執事)는 백미 17되와 동전 600문을 지급하고, 서기(書記)는 백미 15되와 동전 500문을 지급하며, 장재(掌財), 전병(典兵), 종사(從事), 포령(砲領)은 백미 10되와 동전 500문을 지급한다.
一. 본 고을의 포군은 이미 명답(名畓)이 있으므로 월료는 지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고락을 함께 한다는 뜻에서 조금 보살피지 않을 수 없으니 백미 5되와 동전 200문을 지급한다.
一. 소모사의 임무는 오직 힘써 의병을 모집하는 것이지만 관군과 협력한 과거의 규례가 있다. 전투와 수비의 기밀, 군량의 조달, 문서의 마감 등의 일은 관아와 민간이 힘을 합쳐 도와서 서로 어긋나도록 하지 않는다.
一. 신설 포군 200명은 일단 명답(名畓)이 없어서 영구히 설치하기는 어려우니 비류(匪類)들이 평정된 뒤에 사유를 자세히 적어 임금께 아뢰어서 편리한 대로 조처하도록 한다.
一. 군량을 모으는 일은 가장 급선무이다. 나라를 위하여 적개심을 가지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지닌 자라면 모두 같을 것이니, 재물을 의연(義捐)하는 데는 귀천을 나눌 수가 없다. 종사관(從事官)이나 소모유사(召募有司)는 각 면(面)으로 나누어 가서 충의(忠義)로써 격려하고 화복(禍福)으로 비유하며 이해(利害)로써 깨우쳐서 그들이 감동하여 분발하고 떨쳐 일어나 기꺼이 의연(義捐)하도록 하고 절대로 강제로 할당하여 거둠으로써 원망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한다.
一. 우리 고장은 사대부가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인데, 사대부들은 임금의 은택을 입은 것이 평민들보다 훨씬 더 많을 뿐만이 아니다. 더구나 경전(經傳)을 읽고, 도리(道理)를 알고, 분의(分義)를 깨우쳤으니 난리를 만나 순국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들이 권면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가지고 있다. 아전들로 말하자면 비록 대대로 부사(府史)의 업무를 세습하고 도필(刀筆)의 직[문서행정]에 머물러 있었으나 조상 때부터 편안하게 살았던 것은 모두 국가의 은택이니, 의분을 발휘하고 충성을 바치는 것이 어찌 사족(士族)에 뒤쳐질 수 있겠는가? 지난날 영조(英祖) 때에 조정에서 사목(事目)을 반포하여 정결(正結)을 지급함으로써 기리고 격려하는 은전(恩典)을 베풀었으니 임금께서 뜻한 바가 있으신 것이었다. 그 가운데 많은 곳에서 덜어 적은 곳에 보태주고 능력에 따라 연조(捐助)함으로써 특별히 보답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一. 외촌(外村)은 이웃 방(坊)부터 서로 연결하여 매 5가(家)를 1통(統)으로 만들고 매 5인을 오(伍)로 편재하여 경비할 때 서로 돕고 위급할 때 서로 구원한다. 만약 적이 쳐들어왔는데 방어할 힘이 부족하면 즉시 의병소(義兵所)에 보고하여 군사를 정돈하여 가서 힘을 합하여 토벌할 수 있도록 한다.
一. 날을 번갈아 가며 군사훈련을 하면서도 저들을 체포하여 벌주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한 고을 전체에서 양민 및 귀화한 비당(匪黨) 외에 접주(接主), 접사(接司), 행패를 심하게 부리는 자, 백성을 현혹시키면서 마음을 바꾸지 않는 자를 철저히 수색하고 체포하여 징벌함으로써 신속히 소탕하기를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