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상주향교에 체문을 보냄[同日下帖尙州鄕中]
체문(帖文)을 내리는 일이다. 나 소모사는 어리석고 미천한 몸으로 잘못 중요한 직책을 맡아 내가 맡은 바를 잘 수행하지 못할까 밤낮으로 걱정하였다. 다행히도 고을의 사대부 여러 군자들이 나를 버리지 않아, 내가 업무를 시작한 초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일제히 일어나서 임원을 선출하여 의로운 목소리가 한 도(道)를 진동시켰으니 어찌 장하지 않은가? 그런데 수위(首位) 어른이 아직 멀리서 돌아오지 않아 사람들의 마음이 답답하였는데 지금 삼가 들으니 그가 돌아와서 많은 선비들이 구름처럼 모였다고 한다. 그 기쁘고 다행함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제단을 설치하고 기치를 세우면 뭇 사람들의 마음에 의지처가 생길 것이니 모의하고 계획하는 데에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병정들을 소집한 지가 여러 날이 되어 급료를 지급할 일이 시급한데 군량을 모으는 일은 전혀 정해진 계획이 없다. 비록 조금 부유한 거족들이 능력에 따라 의연(義捐)하여 그것으로 당장 급박한 수요는 해결하였으나 거듭된 흉년으로 백성들이 파산하여 흩어진 이때 여러 달 계속하여 군량을 지급할 방도가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어찌 걱정스럽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누추한 거리의 힘없는 백성들은 차치하고 논하지 않더라도, 유학에 종사하여 분수와 의리를 대략이나마 알고 집안이 꽤 넉넉하여 식량에 여유가 있는 자들이 반드시 오로지 인색만을 일삼으며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는 의로운 거사로부터 자신들을 제외시킬 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각 면의 모곡유사(募粟有司, 군량모집 담당관)와 도약정(都約正) 및 부약정(副約正)이 충의(忠義)로서 격려하고 화복(禍福)과 이해(利害)로써 비유를 들어 각자가 마음을 움직여 분발하고 떨쳐 일어나 국가의 위급함에 몸을 바치도록 한다면, 힘들여 고생하지 않더라도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자연히 조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나의 이 어리석은 생각을 경내의 대민(大民)과 소민(小民)들에게 널리 알려서, 그들이 이를 본받아 몸과 마음을 합하여 끝내 대사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매우 다행이겠다.
전에 본 고을에 감결을 발송하여 힘없는 백성들을 침탈하지 말라고 효유하였다. 이것은 업무를 시작하는 초기에 먼저 은택을 베푸는 것을 보여주어 온갖 방법으로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아울러 백성들을 다그치고 위협하는 버릇을 징계한 것이다. 어찌 지역 사대부(士大夫)만이 그 책임을 떠맡고 평민과 하호(下戶)들은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으면서 군국(軍國)이 일치단결하여 거행하는 일에 전혀 힘을 보태지 않는가? 일의 이치를 따져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번에 나의 이 뜻을 사람마다 일일이 깨우쳐서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방법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쓴 것이다.
또 비류(匪類)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자신들의 사정을 아뢰고 귀화한 뒤에 의병이 되기를 자원하는 자는 그 처지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더구나 본 소모영과 본부(本府)에서 전후로 그들을 매우 극진하게 보살펴주었다. 만약 그들이 마음을 선량하게 고쳐먹고 과거의 잘못을 지금 벌충하려고 하는 것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비록 곳간을 비우고 처첩들을 군대에 내보내더라도 다 벌충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에 이 뜻도 함께 알리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