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일. 예천집강소에 전령을 보냄[同日傳令醴泉執綱所]
동도(東徒)들이 난리를 일으킨 이래 영남의 모든 고을이 새와 물고기처럼 놀라서 아무도 감히 그 예봉을 건드리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오직 예천(醴泉)만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서 여러 차례 적들을 무찔러 온 도에 무위(武威)를 떨쳐 적의 소굴이 소탕되었으며 그 덕택에 백성들이 안도하게 되었다. 경영(京營, 巡撫營)에서 이를 칭찬하였으며 이웃 고을은 이를 본받아 흥기하였는데, 그 전후의 공로를 논한다면 집강(執綱)을 맡은 한 두 명의 이교(吏校)들이 당연히 윗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일을 집행할 때에 도를 지나친 적이 상당히 많고 호령(號令)을 내릴 때에 거리낌 없이 임의대로 하여, 관아의 법률로 통제할 수 없고 감영의 신칙을 하찮게 여기니 원망이 비등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들려오고 있다. 과연 이와 같다면 이전의 공로는 작은 잘못 때문에 무너지고 이후의 폐단은 크게 드러나서 백성들의 근심을 언제 해결할지 모르게 되니 어찌 놀랍고 한탄스럽지 않은가? 또한 생각건대, 너희 집강 무리들이 한껏 사기가 충만하여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스스로 교만하고 사나운 군율에 얽매여 있으니 참으로 화가 난다. 그러나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으므로 이에 글을 작성하여 신칙하니, 지금부터 서로 조심하고 권면하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도 반드시 먼저 법사(法司)에 알리고 감히 마음대로 시행하지 말도록 하라. 또 대민(大民)과 소민(小民)들에게 집강소를 설치한 뜻이 나라를 위하고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데에 있음을 잘 알려서 의로운 용기를 가진 자들이 모두 분연히 달려가서 함께 일을 돈독하게 하도록 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효유(曉諭)한 뒤에도 만약 계속 미혹함을 고집하며 고치지 않는다면, 참형(斬刑)이 본래 엄중하니 마속(馬謖)이라도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각자 신중하게 살펴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