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감영에 이문을 보냄[同日文移監營]
상고할 일입니다. 본관이 업무를 보기 시작한 뒤, 지난 달 28일에, 체포한 비류들을 총살한 일에 대하여 이미 이문을 보냈습니다. 이어 유격장 김석중(金奭中)의 보고를 접하니, “11월 27일에 충청도 보은(報恩) 점동(店洞)에 도착하여 남진갑(南眞甲)을 잡았는데, 이놈은 전에 총을 맞고 도망간 놈으로 죽다가 살아난 자인데 지금 다시 잡았으니 잠시도 살려둘 수가 없어 바로 총살하였습니다. 29일에는 충경포(忠慶包) 접사(接司) 여성도(呂聖度)와 같은 무리 김성칠(金成七), 청산읍(靑山邑)의 거괴(渠魁) 강경중(姜敬重)을 잡아 청산읍 동시(東市)에서 총살하였습니다. 12월 초 2일에는 청산 거남리(車南里)에 들어가서 비류의 선봉장 서오덕(徐五德)과 포덕장(布德將) 김경연(金景淵)을 잡아 그날 총살하였습니다. 초 4일에는 옥천(沃川) 횡지(橫池)에 도착하여 옥의포(沃義包) 대장(大將) 정윤서(鄭允瑞)를 사로잡아 즉시 총살하였습니다. 군대를 돌려 영동(永同)으로 향하여 이른바 좌익장(左翼將) 장여진(張汝振)을 체포하여 초 5일에 황간(黃澗) 수석촌(水石村) 앞에서 총살하였습니다. 그대로 회군하여 초 8일에 상주목(尙州牧)에 도착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본관은 더욱 탐문을 강화하여 비류 이득이(李得伊), 박기봉(朴起奉), 권화일(權和一), 김순오(金順五), 이도생(李道生), 배춘서(裵春瑞), 박창현(朴昌鉉) 등 7놈을 잡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거괴(渠魁)로서 그 죄를 용서할 수가 없는데다, 각자 모두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달 12일에 상주목사(尙州牧使)와 함께 군문에서 개좌(開坐)하여 이득이와 박기봉은 효수하고 권화일 등 5놈은 모두 그 자리에서 총살하였습니다. 무주(茂朱)의 적도(賊徒)들이 크게 기포(起包)하여 와서 이미 청산, 영동, 황간 등의 고을을 함락하고 이달 12일에 곧장 상주 경계에 이르러 상황이 매우 다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유격장을 파견하여 군사 200명을 거느리고 각 면의 병정들과 힘을 합하여 극력 방어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적은 강하고 우리 군사의 숫자는 적어 오늘까지 나흘 동안 한편으로 나가 싸우고 한편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편 본 고을의 동도(東徒)로서 법망을 빠져나간 거괴(巨魁)인 최인숙(崔仁叔), 윤경오(尹景五), 김순녀(金順汝), 전명숙(全明叔) 등 4놈이 청산의 적당(賊黨)으로부터 몰래 자기 집으로 숨어들어 장차 기포(起包)하여 내응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정황이 분명하여 이달 13일 해시(亥時, 밤 9~11시)에 은밀히 병정을 보내 4 놈을 잡아다가 엄중히 조사하여 공초(供招)를 받아내었는데 모두들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지금처럼 적의 경보가 다급한 때에 그들의 목숨을 잠시라도 살려둘 수가 없어서 오늘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본주(本州)의 목사(牧使)와 함께 군문에서 개좌하여 모두 효수하였습니다. 지금 적의 세력이 크게 성하여 이미 상주읍에서 50 리 안의 거리에 육박하였으나, 오직 유격대가 온 힘을 다하여 막고 있기 때문에 저들이 흉악한 창끝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청한 군사들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급박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의정부와 도순무영(都廵撫營)에 낱낱이 보고하고 이에 이문을 보내오니, 귀 감영에서 속히 임금께 아뢰어서 상고하여 시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