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의정부와 내무아문에 보고함(감영에 보낸 이문의 내용도 이와 비슷함)[同日報議政府內務衙門 監營送移文辭意亦倣此]
첩보하는 일입니다. 이달 18일에 적을 쳐부순 뒤에 20일에 군사를 철수시키고 음식을 베풀어 위로한 상황에 대하여 전에 이미 첩보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적의 경보가 시급한 때에 그들을 자세히 살펴서 체포하는 일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 군문의 군교와 나졸에게 신칙하고 상주진(尙州鎭)에 관문(關文)을 발송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방면으로 사찰하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비류의 세작(細作, 간첩) 박효식(朴孝植)을 상주진에서 붙잡아 공초(供招)를 받고 정황을 파악하여 보고하였습니다. 충청도 영동(永同)의 김흥업(金興業)과 김경학(金慶學), 청산(靑山)의 안소두겁(安小斗劫), 김유성(金有成), 박기준(朴基俊), 지상록(池尙彔), 황간(黃澗)의 김사문(金士文), 이상신(李尙信), 신윤석(申允石) 등 9놈은 모두 이번 적포(賊包)의 거괴(渠魁)로서 장차 기포(起包)를 하기 위하여 상주 각 면(面)에 잠입하였으므로 모두 잡아들여 여러 경로로 문초하였더니 정황이 분명하였으며 하나하나 승복하였습니다. 상주 내서면(內西面)의 전오복(全五福), 갈곡(葛谷)의 이규삼(李圭三), 화령(化甯) 장터의 이태평(李太平) 등 3놈은 모두 비류인데, 전오복은 적지에서 몰래 정탐을 나온 놈이며, 이규삼은 30년 동안 동학의 접괴(接魁)로 있는 자이고, 이태평은 비류에 들어가서 노비의 신분으로 주인을 구타하였으며 또 정탐하기 위하여 잠입한 놈입니다. 이들을 모두 수색하여 붙잡아 일일이 공초를 받았더니 모두 자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달 22일에 상주목사 이만윤(李晩胤)과 함께 군문에서 개좌(開坐)하여 위의 박효식은 효수하고 김흥업 등 9놈은 총살하였으며, 전오복 등 3 놈도 이달 24일에 군문에서 개좌하여 총살하였습니다. 나머지 죄수들 가운데 위협에 못 이겨 따라간 자들에 대하여 그 연유와 정황을 자세하게 조사하였더니 전혀 의혹이 없는 자들이 36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귀화하여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라는 뜻으로 일일이 효유하여 석방하였습니다. 이에 사실대로 첩보합니다.
의정부 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