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1일 [九月初一日]
이성호와 이인팔이 또다시 갈렸다고 들었으며, 수교 임경집(林景集)과 색리 서동로(徐東魯), 이백원(李百源)을 도령(都領) 및 좌우령장(左右領將)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방 이윤관(李允寬)이 장부를 조사한 여러 동료들과 더불어 8월 그믐날 영문으로부터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서동로도 또 수쇄색(收刷色)으로 나아가서 조사하고 겨우 돌아왔는데 이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순영에 보고한 것에 대한 회답의 글 “보고가 도착하였다. 난리를 일으킨 무리들을 모두 죽여서 쫓아버린 것과 백성을 위하여 해악을 제거하는 것이 비록 매우 통쾌한 일이지만, 법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마음대로 죽이고 마음대로 불을 지른 일은 매우 놀랍다. 이런 행동은 비록 당장의 분한 마음에서 나왔더라도 그 불법을 따지자면 또한 동학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저들이 난리를 일으키고 패악한 일을 일으키는 때에 흉년으로 민심은 더욱 왔다 갔다 한다. 말과 생각이 이에 이르니 나도 모르게 걱정이 된다. 우선 읍촌을 밝혀서 깨우쳐 각각 놀라지 말고 안도하게 하며, 이미 지나간 일은 추적하여 밝힐 필요 없다. 이후부터 방어하고 지키는 것을 비록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많은 민인들이 오랫동안 모여 있게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단속하여 기미에 따라 힘을 합쳐서 대응하고 제어하며 그러한 상황을 빨리 보고하라”고 하였다.
순영에서는 보고를 올리기 전에 영사(令辭), 1지(紙)를 내어서, 영교 1명을 보내어 본주에 도착하였는데, 그 영사는 대개 이들 잡류들이 동학에 의탁한 것을 빙자하여 폐단을 일으키는 자는 그때마다 잡아서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