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오후에 소나기가 크게 내리고, 폭풍이 갑자기 불어 완골(莞骨)이 다 쓰러졌다. 비가 수▣에 불과하여 2, 3일 정도만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따름이다. 저녁 해가 질 무렵, 아이들이 화동(花洞)에서 오는 길에 문삼달(文三達)을 만났다. ▣ 그가 이르기를, “내가 서울 수비 기병대(騎兵隊)에 들어가 당번을 섰었습니다. 이번 달 초 4일 왜병(倭兵)들이 장안(長安, 서울)으로 크게 몰려들어와 내외로 가득 찼습니다. 왜병은 원대인(袁大人, 袁世凱)과 10여 일을 대치하였습니다. 14일 원대인이 중국으로 돌아가자, 21일 왜병들이 갑자기 궁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임금님께서 파천(播遷)하려 하자, 왜병들이 가로막고 서며 말하길, ‘5조약(五條約)을 얻길 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평양(平壤) 병대(兵大, 大는 隊의 오자)가 ≪왜병≫ 몇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하교(下敎)하시길, ‘만약 왜인(倭人)을 상하게 하면 삼족을 멸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병대(兵大)와 기병(騎兵) 등이 창을 던지며 달아나면서 말하길, ‘우리들은 국가를 위하여 온 것이요. 지금 이와 같이 한다면 서울에 있어 무엇 하리오?’ ≪하며 다 떠나가니, 병대와 기병 중에서≫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경향(京鄕) 각지에 소요가 일어나고 도로가 막히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6월28일
비로소 완골(莞骨)을 베었다. 그믐날 날씨가 봄날과도 같았고, 흙비[土雨] 같은 것이 내렸다. 해가 떨어질 무렵, 햇빛이 몹시 붉었는데, 혹자는 ‘일식(日蝕)’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