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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9월 초6일

저물녘에 천둥·번개가 심하였으나 비는 조금만 내렸다. 수일 후에 전해 들으니, 용산(龍山) 사람 장의중(張義重)과 동면(東面) 사람 손천팔(孫千八)이 도인을 다수 거느리고 성주(星州)를 화공한 뒤 노략질하여 왔다고 하였다.

9월 초9일

관례(冠禮, 성년식)를 순조롭게 치렀다.

9월 초10일

벼를 베기 시작하였다.

9월 18일

타작을 마쳤다.

9월 20일

초례(醮禮, 혼인예식)를 순조롭게 치루고 돌아왔다.

9월 22일

우례(于禮, 신부가 처음 시집으로 가는 예식)를 순조롭게 행하고 손님들을 보냈다.

9월 23일

양산(陽山)의 필공(筆工, 붓 만드는 사람) 박생원(朴生員)이 와서 소매 속에서 당시의 비기(祕記) 한 편을 꺼내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靑馬九十殺氣多尙黑者死散文生如何 日出方興者不向落草花二夕十巾全牛一王人不失生八八人人死大中冬至末小下雪之初三三在一二生川二人不去 甲午晦日米又曰起包大起云” 라고 적혀 있었다.

9월 24일

보리를 갈기 시작하였다.

9월 26일

본읍(本邑, 영동)에서 처음으로 기포(起包)하였다.

9월 27일

크게 기포하여 군수물자를 빼앗고 명령을 내려 말하길, “이 한도(寒刀, 큰 칼)를 차고 달려오라.”라고 하였다. 속인(俗人)들이 이르길, 심장이 비록 덜덜 떨리지만 입을 다물고 흩어진다 하였다.

주석
“靑馬九十殺氣多尙黑者死散文生如何 日出方興者不向落草花二夕十巾全牛一王人不失生八八人人死大中冬至末小下雪之初三三在一二生川二人不去 甲午晦日米又曰起包大起云” 이 뜻은 알 수 없다. 이 기포(起包)는 북접 동학교단의 기포령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최시형은 9월 18일 영동과 인접한 옥천 청산에서 회의를 거쳐 전국에 기포령을 내렸는데, 그에 따라 9월말부터 각지에서 동학도인들이 무장봉기하였다. 영동에서는 9월 26일 처음으로 기포하였다(9월 26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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