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4월 초4일
지례(知禮)·황간(黃澗)에 갔다.
4월 초7일
집으로 돌아왔다.
4월 초9일
화치로 가서 돈 5냥을 갚았다.
4월 초10일
용산(龍山)에 갔다.
4월 13일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지난달부터 머물렀던 의병들이 황간에서 청산(靑山)으로 향하였다가 보은(報恩)에 이르러 상주(尙州)로 가서 흩어졌다고 하였다.
4월 14일
뜻하지 않게 병정 50여 명이 옥천(沃川)에서 와서 곧바로 읍내로 들어갔다.
4월 15일
황간으로 갔다.
4월 17일
저동(杵洞)에 갔더니 임난수(林蘭秀)가 영영(嶺營)에서 와서 이르길, 안동(安東) 의병들이 크게 기세를 떨쳐 대구(大邱) 병정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였다.
4월 초8일
병정 200명이 또 안동(安東)으로 떠났다.
4월 18일
또 들으니, ▣▣ 의병들이 크게 기세를 떨쳤다고 하였다.
4월 20일
▣를 고쳤다.
4월 21일
전동지(全同知)가 계를 한 뒤 마시고 6냥 5돈을 적어두었다. 해질 무렵에 본읍 수령이 남창(南倉)으로 떠났다가 돌아왔다. 이 해에 보리농사가 크게 풍년이 들었는데, 처음에는 1되에 1돈 하다가 나중에는 1돈 5푼이 되었다. 벼농사도 아주 잘 되어 추석에 햅쌀을 올렸다. 10월에는 쌀 1되에 3돈 5푼 하다가, 섣달에는 5돈이 되었다. 쌀값이 오른 것은 일본인들이 다른 나라로 쌀을 무역하였기 때문이다. 섣달에 이르러 지진이 자주 발생하다가, 섣달 11일 저녁 후에 큰 지진이 있었다. 이 해 여름, 병정(兵丁)들이 종종 순찰을 돌며 지나가다가, 10월부터 본읍에 처음으로 병참소(兵參所, 參은 站의 오기)를 설치하고, 52명씩 1개월을 기한으로 번을 들며 와서 머물렀다.
섣달 20일 이후부터 날씨가 점차 따뜻해졌다. 26, 27일 이후에 동풍이 3~4일간 크게 불었다. 29일 가랑비가 내렸다. 그믐날 오후에 큰비가 내리고 밤에도 큰비가 내렸는데, 사람들이 모두 처음 보는 일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