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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순무선봉진등록 巡撫先鋒陣謄錄
일러두기

권장 10월 25일 [勸獎 十月二十五日]

별군관 겸 경리청 부영관 안성군수가 보고하는 일입니다. 이번 23일 인시 경에 충청도 관찰사의 지시에 따라서 군수는 뒤에서 원조하는 참령관 구상조, 참모관 이상덕(李相德)·이윤철(李潤徹)·신효식(申孝湜)·황승억(黃昇億), 대관(隊官) 조병완(曺秉完)·이상덕 및 교장 김홍엽(金弘燁)·이봉춘(李鳳春)·이장혁(李章爀)·우기준(禹基埈)과 더불어 2개 소대 병사를 통솔하여 진영을 나가 공주목으로부터 남쪽으로 거리가 10리 되는 효포(孝浦)를 지키면서 사방을 정탐하였습니다.

이경(二更, 오후 9∼11시) 이후에 보고하는 말에, “호남(湖南)의 적 전봉준이 40,000명을 이끌고 남쪽으로 거리가 30리 되는 경천에서 노략질을 하면서 장차 공주목을 향하려 한다고 말했다” 하였습니다. 옥천포(沃川包)의 동도 수만 명은 동쪽으로 거리가 30여 리 되는 대교(大橋, 현 공주시 장기면 한다리)에 모여 주둔하고 있다가 전봉준과 합세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후원이 없는 고립된 군사로 한 곳을 방어하는 것도 이미 대단히 곤란하고 어렵습니다. 하물며 효포는 장기면과 경천면 두 곳의 배와 등이 되어 적의 공격을 받는 곳이 되어 오래 머물기가 어렵습니다.

새벽닭이 울기를 기다려 즉시 출발하여 진영을 25리 뒤로 물리고 수촌(壽村)에서 아침밥을 먹고 대교 뒷길을 따라 20리를 진군하여 멀리 바라보니 동네 뒤의 작은 기슭에 숲에 의지하여 진을 친 자들이 수천 명이었으며, 넓은 들판에 깃발을 꽂고 둘러 있는 자가 족히 수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몰래 배후에서 먼저 숲에 있는 적들을 습격하고 조금 있다가 포를 쏘면서 산을 내려가 넓은 들판의 적들과 서로 마주쳤습니다. 그 숲과 기슭을 빼앗으려 서로 포를 쏘면서 반나절을 대치하여 죽인 자가 20여 명이고 사로잡은 자가 6놈이었습니다.

그런 뒤에 점점 해산하여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달아나기에 병사가 45리를 뒤쫓아 가서 반나절을 서로 싸웠습니다. 그런데 날은 저물고 병사는 피곤하여 하나하나 토벌하고 싶었지만 진퇴양난이었기 때문에 방(榜)을 써 붙여서 백성을 안심시키고, 적들이 버리고 간 약간의 물건들을 주워 모았습니다. 곧 군대를 돌려 다시 수촌에 도착하였는데 길에서 명령을 받고는 돌아와 공주목에 부대를 머물게 했습니다. 사로잡은 여섯놈은 효수하여 뭇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 이에 포로를 바치며 아울러 노획한 물건은 책으로 엮어 올려 보냅니다.

제(題): 책은 받았거니와 고립된 군사로 밤낮없이 멀리 가서 이렇게 크게 이겼으니 용감한 군심(軍心)이 매우 가상하다. 마땅히 사유를 갖추어 보고를 전하겠다. 그리고 붙잡은 여러 놈들은 잠시도 용서할 수가 없으니 시간을 기다릴 것 없이 법으로 다스린 뒤에 즉각 순무영에 보고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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