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同日]
온양군수가 보고합니다. 방성모를 체포하려한 계획, 편명철의 아들이 출타한 사실, 방구용의 성명을 낱낱이 조사한 것, 그리고 정석호·방구현·정제권이 동학에 물든 곡절 등을 조사하여 보고한 공문에 대한 회답의 내용이 지난 달 26일에 발송되어 28일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내용에, “3명의 죄인이 공술한 것은 믿기가 어렵다. 진실로 마땅히 빨리 중한 법[사형]을 시행해야 하지만, 큰일이 앞에 있어서 오히려 작은 일에 속하므로 전과 같이 엄히 가두도록 하라. 편·방 두 놈은 기필코 정탐하여 체포할 것이며, 방구용은 다시 즉시 자세하게 조사하여 일체 보고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방성모, 편명철의 아들 덕진은 장수와 나졸을 많이 풀어서 계속하여 더욱 기찰하고 염탐하였습니다. 편·방 두 놈은 출타한 뒤로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잡아 가두지 못하였습니다. 방구용은 경내에서 조사해 보았지만 과연 같은 성명인 자가 없었습니다. 본 읍의 삼공형(三公兄)이 여러 날 갇혀서 이렇게 막중한 군대의 일을 거행하는 때에 지장을 초래하여 수족을 부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에 이에 다시 사실을 뽑아서 보고합니다.
제(題): 이러한 소요가 있을 때를 맞아 임기응변의 방법이 없을 수 없다. 갇혀있는 공형은 먼저 풀어주고, 방·편 두 놈은 기어이 잡아 가두도록 할 것이며, 방구용은 우선 체포해 가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