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 1894년 11월 초 8일 [警報 甲午十一月初八日]
선봉진이 보고합니다. 공주의 연동(連洞)에 사는 접주 장준환(張俊煥)이 스스로 행패를 부리고 곧 한 읍의 거괴가 되었다가 지난 25일 호남의 비류가 패하여 돌아간 뒤에 감히 포를 설치하고자 몰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달 초 1일 밤에 병사와 공주감영의 포교(捕校)를 보냈더니 애통하게도 저 장가(張哥) 놈이 기미를 알고 달아나서 결국 체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집을 수색하니 깃발을 만들고 무기를 많이 모아 놓았는데, 당장 수색해 온 것만 해도 총 3자루·환도(還刀) 1자루·창 13개 및 그 밖에 포를 설치할 때 작성한 각 문서입니다.
이달 초 3일 공주에 사는 전 오위장(前 五衛將)이었던 본 진영 별군관 이상만(李象萬)이 원당(元塘)·단평(丹坪)의 양쪽 마을의 장정들을 거느리고 장준환을 찾아 체포하여 진영 앞으로 보내 왔습니다.
지금 이상만이 의분을 내어 힘을 바쳐 거괴를 쫓아 체포한 것은 가상한 일이기에 먼저 본 진영에서 엽전 50냥을 시상하였습니다. 또 금영에서 특별히 200냥을 주었고, 두 동네의 동포(洞布)를 감면하여 권장하는 뜻을 보였습니다.
전 오위장 이상만은 별도로 권장하는 절차가 없어서는 안 되기에 특별히 처분할 것이며 장준환은 잠시도 용서할 수 없기에 진영 앞에서 목을 베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원한에 답하도록 하였습니다.
제(題): 이상만이 힘을 내어 노고를 다한 것은 지극히 가상하다. 정부에 보고하여 상을 내리도록 할 것이다. 12일 발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