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일 1894년 11월 15일 [望日 甲午十一月十五日]
경리청 부영관 겸 안성군수가 보고합니다. 이달 13일 신시 쯤에 지령에 따라 대관 조병완·김명환, 참모관 황승억, 교장 김홍엽·정재원·우기준·고진용(高鎭用)과 더불어 소대 군사를 거느리고 일본 군사와 즉시 출발하여 대교에 이르러 숙박하였습니다. 14일 행군하여 연기현에서 점심을 먹고 부강에 도착하여 숙박하였습니다. 닭이 울 때에 이르러 문의현(文義縣)의 보부상 2명이 전령 한 장을 가지고 왔는데 곧 이것은 그곳의 현령이 보부상에게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이르기를, “들으니 비류가 청주에서 패배하여 신탄진 파군(坡軍) 등지로 도망가서 모여 있으니 그 형편을 헤아려서 부대의 행진(行陣)을 인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소위와 더불어 행군을 의논해 토벌할 계획입니다.
제(題): 통위영·장위영 두 진영은 오늘 노성읍(魯城邑)의 비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갔다. 본 진영이 이미 신탄 파군으로 향하였으니 이곳은 곧 진잠으로 향하는 길이다. 청주에서 패하고 돌아가는 비도들이 해당 읍을 침범하였으니 힘을 다하여 토벌하라. 잠시 비록 저들을 쫓아냈으나 문서를 보니, 시급한 형세라는 내용이 진잠의 공문에 있었다. 날짜를 정하여 나가서 구원한 뒤에 날을 약속하여 논산 등지로 나가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