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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순무선봉진등록 巡撫先鋒陣謄錄
일러두기

승승 11월 16일 [乘勝 十六日]

통위영 우참령관이 보고합니다. 일본군 대위가 말한 내용에, “노성·논미(論味, 논산) 양쪽의 비류들이 모두 도망가서 정천으로 간다”는 뜻으로 말을 하였으나 선봉진의 지시를 기다려 거행할 계획입니다.

제(題): 이미 이에 대한 회답이 있었으니 우선 머물러 주둔하라.

소모관 천안군수 김병숙이 보고합니다. 충청감영 후록에 나열된 조항에, “선비 중에 만약에 계책을 내놓은 사람이 있어서 능히 비류를 토벌할 방책을 바치면 재주에 따라 거두어 써서 관례를 벗어나 장려하고 포상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난번 본 군에 비류들이 날뛰던 날, 민심이 어지럽고 사기가 저조한 이러한 때를 당하여 두세 명의 어진 사람이 한 일의 효과가 대단히 컸습니다.

전 도사 홍유주(洪有周)가 몇 년 전에 성균관(成均館)에서 시험을 볼 적에 사예(司藝)로 뽑혔는데, 경술(經術)과 문학(文學)이 뛰어나고 청백하고 근실하여 평소 호서지방의 두터운 명망을 입어서 이미 조정에서 판별하여 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사(進士) 박영민(朴永民)은 문학이 일찍이 알려졌고 재주와 지혜를 겸비하였으며 사우(士友)들의 말을 많이 들어 아는 것이 많으며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일에 관통하였습니다. 유학 박제면(朴齊冕)·이주혁(李周赫)은 도량이 깊고 크며 지식과 문장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이 네 사람이 본 군에 함께 살면서 서로 권면하며 기강을 바로잡아서 어지러운 무리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고, 시골 마을이 그들에게 의지하고 바라보아서 진실로 많은 선비의 모범이 되었고 한 고을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기치[旌麾]를 세우는 때를 맞아 은혜와 위엄이 이미 떨쳐서 사도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데도 민심은 아직도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 저들을 억누르고 바로잡아 고침에 준수한 선비를 나오게 하고 사림(士林)들을 권면케 함에 이르는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으니 장려하여 발탁하고 권면하는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삼가 순영의 명령에 따라 사실에 의거하여 보고하오니 사또께서는 참작하시어 임금께 특별히 아뢰는 것이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제(題): 마땅히 보고를 올리겠고, 비단 한 고을의 표준뿐만이 아니고 이웃 경내에까지 법식이 될 만하니 지극히 감탄할 만하다.

선봉진이 보고합니다. 소모관 천안군수가 보고한 내용에 ‘운운’하였습니다. 이렇게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4명이 홀로 의리를 보존하고 우뚝 서서 흔들림 없이 온 경내의 모범이 되니 실로 사림의 표준입니다. 그곳 읍의 수령의 요청에 따라 특별히 관계(官階)의 차례를 따지지 말고 장려하고 선발하여 비도를 억누르는 방도로 삼으면 아마도 여론에 부합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의정부에 보고하고 나서 이에 순무영에 보고하니 공손히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제(題): 마땅히 의정부에 보고할 일이다. 21일 발송.

공주진 우영장 이기동이 보고합니다. 경천으로 전진한 사유는 어제 이미 보고했으며, 어제 해시 쯤에 일본군 대위의 부대가 알려준 것에, “우리 병사들은 자시에 즉시 출발하여 경천으로 행진하였습니다. 귀 부대 또한 통위영의 병사와 더불어 경천에서 부대를 합류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시 쯤에 즉시 경천으로 출발하였는데 일본군 대위의 부대가 향하는 곳을 알지 못하여 동트기를 기다려 사방을 멀리 바라보아도 끝내 모습이 없었고, 대포소리만이 노성읍에서 들렸습니다. 그래서 즉시 달려가서 일본군 대위를 만나고 그 일의 실마리를 물으니, “봉화대(烽火臺)를 따라 곧바로 이 읍으로 내려와서 동도 10여 명을 쏘아 죽이니 비류 만여 명이 그 행진을 두려워하여 논산으로 달아났다”고 하였습니다.

일본군 대위와 장위영 병사들이 부대를 합류하여 승승장구하고, 영장은 곧 부대를 나누어 돌아오는 길에 노성 누동면(樓洞面) 칠동(漆洞)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류들이 쌓아 놓은 쌀 51석을 잡아두고 마을 주민을 시켜 내일 수송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또 경천으로 향하는 즈음에 길에서 청산에서 돌아오는 일본군 대위의 병사 100여 명을 만나서 그들로 하여금 논산으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경천의 비류는 도회소(都會所)로 들어가서 또 쌓아 놓은 쌀 127석을 얻어 주민에게 내일 수송해 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창을 가진 비류를 만나 4명을 사살하였으나 병사들도 피로하고 날도 저물어 진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본 주《공주》의 진두면(辰頭面) 봉명동(鳳鳴洞)에서 유숙하고 내일 이른 아침에 진영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제(題): 비류를 소탕하고, 승승장구 추격하여 쌓아 놓은 곡식을 탈취해서 실어오게 한 일은 모두 지극히 통쾌한 일이다.

주석
기치[旌麾] 정휘:군사를 모아 지휘할 때에는 지휘를 표시하는 깃발을 세우고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낸다. 대장기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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