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1월 22일 [甲午十一月二十二日]
교도 중대장이 보고합니다. 이달 초 5일에 파견한 대관 이겸제(李謙濟)가 병사 1대를 거느리고 각 읍으로 나가서 청산 석성리(石城里)에 도착하여 저 무리 수만 명과 한 바탕 접전하여 40여 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초 8일에 금산으로 회군할 때에 옥천의 양산(梁山) 장터에 도착하였으며, 《그곳에서》몇 천 명인지 알 수 없는 저들 무리를 만나 50여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또 초 10일에는 금산읍(錦山邑)에 도착하였더니 저들 무리 수만 명이 읍 안의 산 아래, 산 위에 포진하여 적의 형세가 자못 괴이한바 한 바탕 혼전(混戰)하여 50여 명을 사살하였다고 알려 왔기에, 이런 사정을 급히 보고합니다.
제(題): 도처에서 승리하여 비록 매우 다행이나 많은 병사들이 날마다 피로한 것이 심히 안타깝고 절박하다. 마땅히 사리대로 논하여 위에 보고하여 전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