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同日]
교도 중대장이 보고합니다. 이달 12일에 금산읍에 도착하였으며, 그 다음날 13일에 일본 대대장 미나미 쇼시로(南少四郞)는 주력부대를 이끌고 진산(珍山)으로 향하였습니다. 교도소 병사는 일본군 중위 히라기 조다로(白木城太郞)와 함께 행군하여 14일에 용담(龍潭) 위의 조림(照林) 장터에 도착하여 몇 천 명인지 알 수 없는 저들 무리와 접전하여 30여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포한 동도 20명 가운데 서도필(徐道弼)·박만호(朴萬浩)·이만실(李萬實)·조윤삼(趙允三)·박치팔(朴治八)·김윤일(金允一) 등 6명은 소란을 많이 일으켜 몹시 망측하였기 때문에 모두 총살하고 그 나머지는 타일러서 풀어주었습니다. 16일에 진안읍(鎭安邑)에 도착하여 또 저 무리 수천 명을 만나 한바탕 접전하여 수십 명을 사살하고, 17일에 고산(高山) 산천리(山川里)에 도착하여 저 무리 수백 명과 접전하여 30여 명을 살해하였습니다.
18일에 고산읍(高山邑)에 도착하여 또다시 저 몇 만 명일지 모르는 무리를 만나 한바탕 싸워서 수백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포한 동도 30명 가운데 이른바 접사인 고산에 거주하는 이만학(李晩學)·여관서(呂寬西), 진안읍에 거주하는 김치서(金致西) 등 3놈을 우선 잡아 가두고 창성도(倉聖道)·임성원(林聖元)·김중이(金仲伊) 등 3명은 총살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타이르고 풀어주었습니다. 교도소 병사와 일본병사는 한 사람도 다친 이가 없었습니다. 각처에서 접전할 때에 탈취한 여러 군수품은 법대로 그곳 읍에 두어야 하지만 읍이 빈 곳이 많아 후환이 있을까 염려되어 총 200자루·창 300자루를 깨부수고 화약 100여 근은 물에 띄우고, 탄약 10여 말은 주조하고 그 나머지 긴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또한 태워버릴 계획을 급히 보고합니다.
제(題): 세 고을에서 네 번 승리하여 병사들이 용맹을 떨치고 힘을 다하니 즐거울 뿐 아니라 가상하고 감탄스럽다. 세 놈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고 하는데 과연 조사하고 문책한 단서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냐? 무기를 깨부수고 탄환을 녹인 일은 매우 온당하다. 노고에 보답하는 은전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니, 마땅히 사리대로 논하여 위에 보고하여 전달하겠다. 각별히 독려하여 용맹을 떨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