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同日]
선봉진이 보고합니다. 호남으로 출발하기 위해 노성을 향하여 간 연유는 어제 이미 급히 보고하였거니와 경리청 부영관 안성군수 홍운섭이 2개 소대를 이끌고 연기에서 문의·연산·은진 등의 고을을 거쳐 갔는데 지나는 곳이 안도하였습니다. 은진읍에 도착하여 일본군 대위의 지시로 인하여 우(右) 1소대 병사 50명은 교장 우기준으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군 병사 100명과 함께 고산 용안(龍安) 등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가 금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판치의 앞길에서 만나 그들을 충청도 감영이 바라보이는데 주둔하게 하고, 유시 경에 노성현에 도착하여 숙박하였습니다.
그리고 동트지 않은 축시 경에 도착한 충청도 감영 공문에 포함되어 이곳으로 보내온 초토사의 공문 내용에, “한산에 있는 비류를 토벌하기 위해 군병을 출동한 연유는 이미 공문을 보냈거니와 방금 접수한 우리 군영의 참모관 박명양(朴鳴陽)의 보고 내용에, ‘참모 《박명양》가 전진(戰陣)으로 가는 길에, 남포 주방장(駐防將)인 최재홍(崔在弘)이 보고한 바를 접견하니 이달 19일 신시 경에 관군이 비도에게 패하여 각기 흩어져 도주하여 홍주·보령(保寧)·남포·비인의 군병이 서천으로 도로 들어온 자가 2000명에 불과하며, 적의 형세는 갈수록 더욱 날뛰어 실로 대적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관군이 적의 칼날에 꺾인 것에 놀라움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수성군(守城軍)들이 모두 출전하여 우리 군영을 막아 지키는 것에 소홀함이 있을까 염려되어 빨리 미리 대비책을 도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공문을 보내니 급박한 일의 조짐을 굽어 헤아리셔서, 우리 군영으로 구원병을 보내주시면 힘을 합해 엄하게 경계하겠습니다. 그리고 부대가 행군하는 서천 땅으로 정예 소총수를 나누어 출발시켜서 함께 힘을 다하여 저 무리를 섬멸하는 것이 마땅하오니 상고하여 시행하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하영이 거느린 2개 부대는 비록 이미 출발하였더라도 반드시 임천·한산 등지에 주둔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때에 늦을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날뛰는 적의 형세에 비추어 소홀할 염려가 없지 않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충청도 감영에 머물러 주둔한 경리청 영관에게 명령하고, 또 한편으로는 홍주 등지로 1대를 파견하게 하였습니다. 선봉은 지금 이미 멀리 있으니 문득 갑자기 출동할 수 없기 때문에 경리청의 각 부대를 편의대로 선발하여 쓰도록 충청도 감영에 문서를 발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시 경에 곧바로 떠나서 은진 앞길로 향하였지만, 충청도의 비류가 놀라 아직도 이렇게 날뛰니 다시 충청도와 전라도의 실정을 정탐하여 주둔하는 일은 형편을 살펴 나아가든지 머물든지 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보고 드립니다.
제(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