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同日]
교도 중대장이 보고합니다. 이달 24일 미시 경에 파견한 대관 최영학(崔永學)이 교도병 1대와 일본군 1대를 거느리고 진군하여 금구읍(金溝邑)에 이르러 밤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25일 묘시 경에 행군하여 나아가서 곧 원평에 도착하니 적도 수만 명이 한 번 나팔을 불자 진(陣)을 삼면(三面)으로 벌여 이미 품(品)자 모양을 형성하고, 서로 천 보(步)의 거리를 두고 서로 포를 쏘며 전투를 하였습니다. 손시부터 신시에 이르기까지 포성이 우레와 같고, 탄환이 비오듯 날아왔습니다. 적들은 산 위에 있고 우리 군대는 들에 있었는데 사면으로 포위하고 함성이 땅을 흔들고 불꽃과 연기가 안개를 이루어 원근을 분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대관 최영학이 칼을 뽑아 적군을 향하여 먼저 산 위로 오르며 크게 호령하며 지휘하자 동서로 나뉜 부대가 한꺼번에 힘을 써서 다투어 먼저 올라가고 혹은 찌르고 혹은 목을 베어서 죽인 적이 37명이었으며, 남은 무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각자 도망하였습니다. 산세가 가파르고 험하고 해는 이미 저물려 하고, 게다가 적도들의 행색이 모이면 동학임을 알 수 있으나 흩어지면 농민의 모습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추격하여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빼앗은 군수품은 회룡총 10자루와 조총 60자루·탄환 7섬·화약 5궤짝·자포(子砲) 10좌·칼과 창 200자루·쌀 500섬·돈 3000냥·면포[木]10동·소 2마리·말 11필·연우피(鍊牛皮) 10장·호피(虎皮) 1령(令)을 아울러 일본 주력부대에 귀속시켰습니다. 그 나머지 활·화살·부서진 총·가죽 갑옷 등 긴요하지 않은 물건은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우리 병사와 일본 병사는 한 명도 다친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유시 경에 군대를 금구읍으로 회군하였다고 하므로 이런 사정을 보고합니다.
제(題): 힘껏 떨쳐서 이렇게 크게 이겼으니 어찌 기쁘고 감탄스러움을 이길 수 있으랴! 마땅히 이를 상부에 보고하여 포상의 은전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획득한 군물품과 돈·면포·쌀과 각 축산물은 모두 소상하게 책자로 작성하여 보고하여 순무영의 처분을 기다려 시행하라.